"지금이 국세청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입니다."
지난달 14일 열린 전국 세무관서장 회의. 취임(7월16일) 후 한달 만에 열린 회의에서 백용호 국세청장은 국세청이 처한 상황을 이렇게 표현했다.
백 청장 취임 당시 국세청은 '선장 없는 난파선'이나 다름없었다. 전임 청장의 잇단 불명예 퇴진으로 국민적 신뢰가 땅에 떨어진 상황에서 청장공백상황이 5개월 이상 지속되고 있었다. 최악의 여건 속에서 새 선장으로 투입된 백 청장으로선 '우리에게 더 이상 퇴로는 없으며 오직 변화와 개혁뿐'이란 점을 강조할 수 밖에 없었다.
백 청장이 구상한 국세청 변화의 방향은 명료했다. 더 이상 '권력기관' 아닌 본연의 '세정기관'으로 다시 자리매김하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리고 이 원칙은 지난달 14일 국세청이 내놓은 세정개혁 방안에 그대로 담겼다.
'백용호식 세정개혁'의 골자는 크게 네가지다. 첫째는 투명성. 백 청장은 국세행정을 보다 투명하게 하기 위해 민간위원들이 주축이 된 국세행정위원회를 설치했다. 그냥 가끔씩 간담회나 갖고 식사나 하는 그런 '보여주기'식 위원회가 아닌, 청장에 구속력 있는 자문과 권고를 함으로써 실질적 견제기능을 갖는 위원회를 만든 것이다.
둘째는 예측가능성. 핵심은 세무조사였다. 사실 세무조사권한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국세청은 권력기관이 될 수도 있고, 세정기관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세무조사를 투명하고 예측가능하게 제도화하는 것은 국세청을 바로 세우는 첫 출발점이기도 했다. 이에 백 청장은 대기업 세무조사를 4년으로 정례화하고, 이례적으로 세무조사 대상기준까지 공개했다.
셋째는 '납세자 프렌들리.' 납세자 위에 군림하는 세정이 아닌, 납세자에 봉사하는 세정이 되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납세자보호관'직책을 신설했는데, 백 청장은 이 자리에 기존 세정조직을 실질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부여했다.
넷째는 외부인력영입. 백 청장은 감사관과 납세자보호관(신설), 전산정보관리관 등 3명의 국장급 보직을 외부에 개방했는데, 이는 국세청의 고질적인 폐쇄문화에 메스를 가하고, 능력 있는 인재영입을 통해 업무 효율성을 높인다는 취지였다.
그 결과 전산정보관리관에 민간 대기업 임원 출신의 임수경씨가 영입돼, 국세청 발족 이래 첫 여성국장이 탄생했다. 이어 감사관에는 미국국제감시센터 소장인 문승호씨, 납세자보호관에는 판사와 대형 로펌 변호사출신 여성인 이지수씨가 영입됐다. 여성국장이 단숨에 2명이나 된 것은 일반부처에서도 드문 일이다.
국세행정 개혁안이 나온지 50일째로 접어드는 지금, 국세청 주변에선 조용하지만 주목할 만한 변화들이 감지되고 있다는 평가다. 한 관계자는 "국세청은 창설 이래 가히 최대의 변화를 맞고 있다"면서 "처음엔 낯선 점도 있었지만 이젠 신뢰회복의 절실함과 함께 변화와 개혁에 대한 공감대가 점차 넓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백 청장 개혁청사진에 대한 평가는 확실히 우호적이다. 대내외적 반응도 좋다. 하지만 이제 겨우 첫 발을 내딛었 을 뿐,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라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새 선장으로서 난파선을 긴급수리하고, 가야 할 항로도 잘 잡았지만, 실제 순항을 위해선 넘어야 할 고비와 풀어야 할 과제도 많다는 지적이다. 후퇴 없는 개혁의지, 그리고 대내외 역풍에 대한 중단 없는 점검과 견제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변화노력은 일회적 '찻잔속 태풍'으로 끝날 수 있다는 것이다.
국세청 출신의 한 인사는 "떨어진 신뢰를 다시 높이는 데는 열배, 스무배의 노력이 필요하다"면서 "국세청이 권력기관의 이미지를 벗고 세정기관으로 다시 서려면 스스로의 뼈를 깎는 자세 뿐 아니라 (정치권 등) 외부의 협조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손재언 기자 chinas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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