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나 사업 아이디어를 사 들인 뒤 이를 침해한 기업을 상대로 거액의 특허소송 등을 제기하는 '특허괴물'(Patent Troll)들의 활동이 본격화하고 있다. 반면 국내 기업들의 특허출원 점유율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정부와 기업이 공동 대응책을 마련하고 나섰지만, 세계적인 특허괴물들에 대응하기에는 턱없이 미흡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29일 전경련과 특허청에 따르면 국내 기업들의 특허출원 점유율은 2005년 59.1%에 달했으나 2006년 53.8%, 2007년 48.7%에 이어 지난해엔 42.3%까지 하락했다. 이는 우리 기업들이 특허 분쟁에 취약할 뿐 아니라 앞으로 이러한 피해가 더 커질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실제로 최근 특허괴물들은 국내 기업들을 본격 사냥하고 있다. 이미 삼성전자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특허 피소를 당한 업체가 된 상태다. 업계에 따르면 2004~2008년 삼성전자의 특허 피소 건수는 총 38건으로 마이크로소프트(34건)나 모토로라(34건)보다 많다. LG전자의 피소 건수도 같은 기간 29건에 달해 소니와 함께 6위였다.
기업들의 특허출원 점유율이 하락하고 있는 반면 대학들의 특허출원 점유율은 상승하고 있다. 대학 특허출원 점유율은 2005년 1.7%에서 지난해엔 4.3%까지 확대됐다. 문제는 이처럼 늘어나고 있는 대학의 특허출원들도 다시 특허괴물에게 넘어가고 있다는 데 있다. 2001년 설립된 미국의 인텔렉추얼벤처스(IV)는 지난해 말부터 올 초까지 국내 8개 대학에서 모두 268건의 아이디어를 매입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인텔, 소니사로부터 50억 달러의 자본금을 유치해 출범한 IV는 무려 2만여건의 특허 포트폴리오를 구축한 세계 최대 특허전문관리회사이다. 이런 IV가 금융위기 와중에도 아이디어 매입시 8,000달러를 지급하고 향후 수익 발생시 20%를 지급하는 조건으로 원천기술이 될 우리 대학들의 아이디어들을 헐값에 쓸어 담은 것이다. 이미 IV는 이중 서울대에서 매입한 114건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137건의 특허를 출원한 상태다. 더군다나 IV가 매입한 연구개발 아이디어에는 대학이 수행한 국가 연구개발(R&D) 과제와 연관성이 높은 사안들도 적지 않다는 게 업계 지적이다.
이런 이유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 2008년말 기준 우리나라 박사급 연구인력의 69%를 보유하고 있는 대학의 특허출원 점유율은 4.3%에 불과했다. 박사급 연구인력의 17%를 보유한 기업의 특허출원 점유율이 대학의 10배에 달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쉽게 납득되지 않는 대목이다.
이처럼 특허분쟁이 발등의 불로 떨어지며 기업들은 대책마련 등에 전전긍긍이다. 전경련도 29일 주요 기업 특허담당 임원들을 대상으로 '제3차 기업 R&D 정책협의회'를 열고 '특허전문관리회사 대응방안' 등을 논의했다. 정부도 아이디어 및 특허권을 매입한 뒤 부가가치를 높여 이를 필요로 하는 기업에 빌려 줌으로써 수익을 창출하는 '창의자본'(Invention Capital)을 조성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이날 회의에 참석한 한 기업의 특허담당 임원은 "수백억원 규모의 창의자본으로 수조원 단위의 특허괴물에 대항하는 것은 역부족"이라며 "본격적인 특허전쟁 시대에 대비하기 위해 기업은 원천기술과 표준에 관한 특허 보유를 확대하고, 대학은 기업에 수익이 될 특허를 제공하는 공조 시스템을 구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일근 기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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