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말의 저명한 영국 수학자ㆍ철학자 화이트헤드는 "서양철학은 플라톤의 각주에 불과하다"고 했다. 오늘날 서구 철학 및 사상에 미친 플라톤의 영향이 그만큼 지대하다는 뜻이다. 19세기와 20세기에 걸쳐 전 세계에 혁명의 열병을 앓게 했던 공산주의는 원시공산사회에 원형이 있지만 사상적 기원은 플라톤의 <국가론> 이다. 플라톤은 이상국가의 조건으로 통치자와 그를 돕는 수호자 집단의 사유재산 금지를 주장했다. 아내 자녀까지 공동소유 대상에 포함시킬 정도로 극단적인 생각이었다. 탐욕의 원천인 사유재산과 사적 인연이 국가를 타락시킨다고 본 탓이다. 국가론>
■ 기독교 초대 교회도 사유재산을 부정하면서 철저한 공동체 생활을 했고, 고대 유대교 전통에도 공산주의적 요소가 있었다. 그러나 근대 계몽사상의 한 축인 공산주의적 이상주의는 대개 플라톤의 영향을 받았다. 공유재산제를 바탕으로 정의로운 사회공동체를 꿈꾼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 는 플라톤의 <국가론> 이 모델이다. 근대 계몽주의 시대의 공산주의자 블랑키, 공상적 사회주의자인 생시몽, 푸리에 등도 플라톤의 제자들이라고 할 만하다. 현대 공산주의를 체계화한 마르크스와 엥겔스도 당연히 플라톤의 저작들을 읽었을 것이다. 국가론> 유토피아>
■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는 대개 동의어로 쓰이지만 엄격하게 구분해 사용되기도 한다. 네오 막시스트 학자들인 후버만과 스위지는 <먼슬리 리뷰> 에 기고한 '사회주의 서설'이란 글에서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에서 발전한 새로운 사회의 첫 번째 형태', 공산주의는 그보다 '더 높은 단계'라고 정의했다. 마르크스에게 공산주의는 생산력 발전의 고도화로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 받으며, 계급이 소멸한 역사발전의 최종 단계였다. 공산주의는 노동자 계급에 의한 근본적 혁명을 앞세우지만 사회주의는 점진적 변화를 배제하지 않는다. 먼슬리>
■ 북한이 4월 12기 최고인민회의에 개정한 헌법에서 공산주의라는 용어를 삭제하고 선군사상을 추가한 사실이 최근 확인됐다. 김정일 체제를 공식 출범시킨 1998년의 헌법까지만 해도 공산주의 용어가 3군데나 들어 있었다. 김정일 위원장은 "공산주의는 파악이 안 된다. 사회주의는 내가 제대로 한 번 해보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공산주의라는 이상사회 단계를 운위할 계제가 전혀 못 되는 현실을 자인한 것일까. 그러나 고립과 궁핍을 탈피하기 위한 현실적 방향전환이 아니라 전혀 별종의 집단주의로 나아가겠다는 뜻인지도 모를 일이다.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