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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민 참사 9개월째…어느덧 추석 눈앞에/ 용산엔 슬픈 달이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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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민 참사 9개월째…어느덧 추석 눈앞에/ 용산엔 슬픈 달이 뜬다

입력
2009.09.28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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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차례 때는 밥 한 그릇 올릴 수 있을 줄 알았더니…."

추석 명절을 꼭 일주일 앞둔 26일 서울 한강로2가 남일당 건물 1층에 마련된 '용산참사' 철거민 희생자 5명의 분향소에선 유족들이 검은 상복에 검게 그을린 얼굴로 9개월째 조문객을 맞고 있었다.

추석 전 사태 해결의 실마리를 만들기 위해 14일부터 열흘간 전국을 돌며 추모제를 열었던 고 양회성씨 부인 김영덕(54)씨는 "구천을 떠도는 넋이 밥 한 그릇 얻어먹지 못해 얼마나 배가 고플꼬"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용산참사(1월20일)가 터진 지 250일째. 벌써 겨울에서 가을로 계절이 세 번이나 바뀌었고 추석 명절도 코 앞이건만 희생자 장례식은커녕, 추석 차례상도 차리지 못할 처지다. 김씨는 "지금 같으면 추석이 안 왔으면 좋겠다"고 울컥했다.

행여 추석 전 극적인 해결책이 나올까, 유족들의 희망은 실낱 같았다. 정운찬 총리후보자의 국회 인사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했던 고 이성수씨 부인 권명숙(47)씨는 "정 후보자가 용산을 찾겠다는 말을 해서 솔직히 놀랐고, 돌아올 땐 마음도 가벼워지긴 했었다"며 내심 기대감을 보이면서도 "가식적으로 한 정치쇼인지도 모르겠다"며 이내 경계했다.

고 윤용헌씨 부인 유영숙(48)씨도 "자기 인사치레밖에 더 되겠냐"며 맞장구를 쳤다. 기대와 의심, 냉소가 순간순간 교차했다.

유족들이 7개월 남짓 머물던 순천향대병원을 떠난 것은 지난 7일. 병원 이용료가 매일 200여만원씩 불어나 8개월 동안 무려 5억 3,000여만원까지 쌓여 더 이상 버틸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김영덕씨는 "우선 1억 1,000만원 내고 나왔는데, 장례식장이 우리 때문에 피해를 많이 봤다"며 미안해했다.

유족들이 새로 마련한 거처는 남일당 인근의 근경빌딩 2층 30여평 규모의 가게 공간. 식당홀로 쓰였던 차가운 바닥은 스티로폼을 깔아 거실로 사용하면서 다섯 유가족 10여명이 나눠 쓰고 있었다. 살림살이라고는 냉장고와 TV, 세탁기, 빨래 건조대와 옷가지가 전부다.

이날 남일당 건물 바로 뒷편에 마련된 '용산참사범국민대책위원회' 상황실에서는 경찰과 유족 사이에 한바탕 시비가 벌어졌다. 경찰관들이 집회불허통지서를 들고 왔다가 옷 속에 소형 카메라를 숨긴 것이 드러나 유족들이 거칠게 항의한 것.

경찰관들이 이내 돌아갔지만 250일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계속된, 이제는 일상이 된 경찰과의 마찰이다. 유영숙씨는 지난달 경찰과의 몸싸움으로 오른쪽 팔꿈치 인대가 파열돼 한달 넘게 검은색 보조장치를 달고 있었다. 유씨는 "의사가 팔을 가급적 사용하지 말라는데 그렇게 되냐"며 한숨을 지었다.

이들에게 추석은 남의 일이다. 고향 방문 계획을 묻자 고 이상림씨 부인 전재숙(68)씨가 "분향소 지켜야지 철거민이 무슨 계획이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고 한대성씨 부인 신숙자(51)씨는 지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이 없었다.

박민식 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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