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7년 안평대군이 꿈에서 본 무릉도원을 당대 최고의 화가 안견이 사흘 만에 그려냈다는 그림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 일본 덴리대(天理大) 도서관 깊은 곳에 숨어있던 이 걸작이 눈 앞에 펼쳐졌다.
왼쪽 아래에서 시작되는 이 그림은 평상세계에서 출발해 도원의 바깥과 안쪽 입구를 차례로 거친 후 맨 오른쪽의 도원에 도달한다. 현실과 도원이 분리된 듯 조화롭게 공존하고 있는 구도, 그 속에 나타나는 섬세한 표현들이 조선 전기 회화의 금자탑이라는 명성을 입증하고 있었다.
■ '몽유도원도'의 감격
국립중앙박물관은 '한국 박물관 100주년 기념 특별전'(29일~11월 8일) 일반 공개를 하루 앞둔 28일, '몽유도원도'를 비롯한 전시품들을 언론에 공개했다.
제작 연대를 알 수 있는 현존 최고(最古)의 조선 회화인 '몽유도원도'는 전시장 말미 한쪽 벽을 메운 유리 진열대 속에 길게 놓였다. 흔히 그림만을 떠올리지만, '몽유도원도'는 시(詩), 서(書), 화(畵)의 세가지 예술이 종합적으로 구현된 작품이다.
안평대군이 직접 그림 제작의 경위를 밝힌 제기(題記)를 썼고, 신숙주 이개 김종서 박팽년 등 당시의 대표적 문인들이 찬시(讚詩)를 보탰다. 그림은 가로 106.2㎝, 세로 38.6㎝ 크기지만, 글씨까지 두루마리 2개로 이뤄진 작품 전체를 펼쳐놓으면 길이가 20m에 달한다.
'몽유도원도'의 고국 나들이는 1996년 호암미술관에서 열린 '조선 전기 국보전' 이후 13년 만이다. 이 작품의 호송관을 맡은 전인지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은 "덴리대 도서관 관계자 중에도 본 사람이 거의 없을 만큼 철저하게 관리되고 있었다"면서 "작품을 보는 순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격을 느꼈다"고 말했다.
'몽유도원도'가 한국 관람객을 만나는 시간은 10월 7일까지 단 9일. 그나마 당초 덴리대 측이 제시한 7일보다는 이틀 늘어났다. 덴리대 관계자는 9일 내내 전시장을 지키다 작품을 갖고 돌아갈 예정이다.
■ '천마도'의 수수께끼
전시장에서 '몽유도원도'의 대각선 방향에는 12년 만에 일반에 공개되는 국보 207호 '천마도'가 자리했다. 자작나무 껍질 위에 그려진 '천마도'는 워낙 손상 위험이 커서 늘 특수보관실에 머물러왔다.
'천마도'는 특히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촬영한 적외선 사진이 공개되면서 그 실체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1996년 찍은 적외선 사진에서 정수리 부분의 뿔이 나타나 그림 속의 동물은 천마가 아니라 뿔을 가진 상상 속의 동물인 기린(麒麟)일 가능성이 제기돼왔는데, 이번 촬영을 통해 뿔의 형상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 것이다.
더구나 이번 촬영 사진에서는 뿔 양쪽에서 2개의 작은 돌출 부분이 포착, 뿔이 여러 개라는 의견이 제기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돌출 부분은 귀로도 볼 수 있고, 가운데 뿔도 갈기의 일부일 수 있어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유병하 국립중앙박물관 전시팀장은 "박물관 내에서도 말인지 기린인지, 또 뿔이 몇개인지에 대해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면서 "이번 전시가 '천마도'에 대한 폭넓은 논의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 한국 박물관 100주년의 정수
'한국 박물관 100주년 기념 특별전'은 전체 2부로 구성됐다. 1부에서 1909년 일반에 개방된 제실박물관의 첫 수집품인 '청자상감포도동자문동채주자', 간송 전형필이 1942년 기와집 11채 값을 주고 사들인 '훈민정음해례본'(국보 70호), 국립경주박물관 설립의 계기가 된 금관총 출토 과대(국보 88호) 등을 통해 한국 박물관사를 훑어본 후 주요 전시품들이 모인 2부가 이어진다.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소장 '수월관음도' 등 해외에서 빌려온 10점의 유물이 이곳에 집중돼있다.
올해 초 익산 미륵사지 석탑에서 발견돼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금제 사리호와 사리봉안기 등 최근 발굴 성과도 망라됐고,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정조의 편지도 처음 공개됐다. 정조가 심환지에게 보낸 '정조신한(正祖宸翰)'은 국정 전반에 관해 언급한 것이고, 외삼촌 홍낙임에게 보낸 '정조어필(正祖御筆)'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안부를 알린 것이다.
전시 유물은 국보 19건, 보물 14건을 포함해 모두 150여점. '몽유도원도'를 비롯한 일부는 전시 일정이 제한돼 있으니 미리 확인하고 관람해야 한다. '천마도'와 '훈민정음해례본'은 10월 11일까지, '석가탑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10월 8~18일, '강산무진도'는 10월 20일~11월 8일, 태조 이성계 어진은 10월 30~11월 8일 전시된다. 관람료는 무료.
김지원 기자 eddi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