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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히말라야의 보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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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히말라야의 보름달

입력
2009.09.28 0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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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힘껏 민 통나무가 종에 닿는 순간 뜨거운 진동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때 문득 깨달았다. 범종이 웅숭깊은 소리를 내는 것은 종 속의 텅 빔 때문이다. 속이 채워져 있다면 큰 울림이 나올 수 없다. 그랬다. 나 역시 마음을 비워야 했다. 아상(我相)과 등정 욕심으로 내면이 꼭꼭 있으면 다른 것이 들어올 자리가 범종처럼 나를 한다. 욕심과 집착으로 내 차 울림 대신 깨지거나 균열이 갈 것이다. 여태껏 해온 것처럼 비우고 고요하게 최선을 다 할 때라야 산이 내속으로 걸어 것이다>

▦ 산악인 오은선씨(43ㆍ블랙야크)가 올 봄 세계 3번째 고봉인 히말라야의 칸첸중가 등정에 앞서 오대산 월정사를 찾아 저녁예불 범종을 타종하며 느낀 소회를 적은 글이다. 그런 수행과 깨달음으로 그는 칸첸중가를 필두로 8월 초까지 다울라기리 낭가파르바트 가셔브룸 등 히말라야의 8,000m급 4개봉을 잇달아 등정하는 기록을 세웠다.'히말라야 14좌를 완등한 세계 최초의 여성 산악인'이라는 명예를 얻는데 남은 것은 '풍요의 여신'이라는 별명과 달리 산세가 험하기로 악명 높은 안나푸르나(8,091m). 주위에선 과속을 걱정했다.

▦ 그는 숨을 골랐다. 하지만 선의의 경쟁을 벌이다 낭가파르바트에서 하산 도중 실족해 숨진 후배 고미영과 함께한 꿈, 어려울 때 아낌없이 후원하고 격려해준 블랙야크의 강태선 사장 등 산악계의 염원, 그리고 자신과의 약속을 생각할 때 멈출 수 없었다. 결코 욕심이나 집착은 아니었다. 비운 마음에 굳이 뭐가 있다면 대기록을 향한 열정이다. 12좌를 오른 오스트리아의 겔린데 칼텐브루너, 13좌에 도전중인 스페인의 에두르네 파사반 등 외국 경쟁자들이 의식되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99년 안나푸르나에서 숨진 지현옥 선배도 떠올랐다.

▦ 그래서 그는 원정대를 꾸려 14일 다시 히말라야로 떠났다. 무리한 일정이라는 일부 우려와 만류를 알기에 그는 안나푸르나가 따뜻하게 안아주는 범위 안에서 한발한발 최선을 다할 뿐이다. 21일 베이스캠프(4,190m)에 도착한 그는 고미영씨와 지현옥씨 추모제를 지내며 등정 안전과 성공을 빌었다. 예정대로라면 내달 20일쯤 정상에 오르게 되지만 성패 여부는 인간의 영역 밖이다. 오 대장은 이번 주 말 험난한 등정 길에서 한가위 보름달을 보며 도전이 이뤄지길 간절히 기원할 것이다. 그 달을 함께 보며 오 대장의 소원이 성취되기를 빌어주자.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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