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의 서민 행보가 속도를 내고 있다. 서민을 위한 정치를 펴는 것은 참 따뜻하고 고마운 일이다. 실질적인 정책으로 구현되기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서민들이 바라는 정책도 그렇게 가슴으로 느끼는 소박한 것이다. 실제 일상의 삶에서 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서민들의 바람과는 달리 거창하고 요란한 이슈가 떠올랐다. 지방행정구역 개편 혹은 자치단체 자율통합이다. 정부는 출범 초부터 지방행정체계 개편을 핵심 국정과제의 하나로 거론해 왔다. 지방선거를 앞둔 내년 7월1일을 시한으로 정해 통합자치단체 출범을 서두르겠다고 발표했다.
진정한 주민 자율적 통합으로
일부에서는 이 문제가 국민적 관심사이고, 따라서 국가적 차원에서 추진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미 국회에도 자율통합지원특례법이 제출돼 계류돼 있다. 현재의 지방행정구역을 개편해야 한다는 원칙에는 공감한다. 무엇보다 서민들이 힘들어하기 때문이다. 이미 지방의 소규모 읍은 행정도시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 아주 작은 읍ㆍ면 소재지에 군 청사와 군 의회, 읍ㆍ면사무소, 법원청사, 경찰서, 교육청 등 온갖 공공기관이 위치하고 있다. 주민들은 주민들대로 불편하고, 돈은 돈대로 들어가는 그런 지역이 도처에 있다.
오래 전 그어진 행정구역은 재조정하는 게 바람직하다. 정부가 이를 '자율통합' 방식으로 추진하겠다는 것도 반길만한 일이다. 행정안전부는 정책 목표를 주민자치기반 확충과 지역경쟁력 강화로 제시하고 있다. 이 또한 무작정 반대하거나 공연히 시비할 이유가 전혀 없다.
그런데 일이 너무 거창하게 커졌다. 정치권은 특례법안을 만들고 행정부에서는 관련 부처가 총출동해 선물 꾸러미를 잔뜩 펼쳐 놓았다. 일부에서는 별로 먹을게 없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이미 25개 기초자치단체들이 통합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이처럼 높아진 기대를 제대로 채우고 애초 의도한 정책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특히 자율통합을 강조하는 것과는 달리 실제 벌어지는 모습은 자율과 거리가 멀다는 점이다. 인구와 재정면에서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일부 자치단체들이 한 식구가 될 다른 자치단체의 의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행정안전부에 통합 신청을 하겠다는 것이다. 정부가 믿고 있는 법안대로라면 일방적으로 통합을 추진하는 자치단체의 요구만 듣고 주민투표를 실시할 수 있다. 또 찬성표가 전체 투표수의 3분의 1이 되지 않아도 유효한 것으로 인정해 줄 수 있다. 도대체 누가 자율의 주체인지 당혹스럽다.
주민들은 정부 시설물이 우리 지역에 하나라도 더 와주기를 바란다. 새로 생기는 기차역에 우리 지역 이름이 먼저 들어가게 하려고 투쟁을 불사한다. 이런 현실에서 정부는 일단 주민투표로 통합을 결정한 뒤 모든 예민한 문제들은 통합추진위원회를 구성해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그 것도 내년 7월까지 마무리하겠다니, 너무 숨이 찬다. 손발이 잘 맞는 파트너들이 열심히 추진해도 가능할지 빠듯하다.
사려 깊은 대화와 설득을
국민 다수가 생각하는 지방행정구역 개편은 이런 모습이 아닐 것이다. 사랑하는 내 아이들이 주소지가 다르다는 이유 때문에 집에서 가까운 학교를 두고 힘들게 먼 거리를 가지 않아도 되고, 100년 전 그은 행정구역 때문에 불편한 몸을 이끌고 마을버스를 타고 군청소재지까지 가야 하는 부모님의 고단함을 덜어 줄 수 있는 개편이 되기를 서민들은 바란다. 조금 더 여유를 갖고 충분한 대화를 해야 한다. 한 식구가 될 사람들을 설득하고 배려해야 한다. 정부는 지금보다 훨씬 조용히, 그리고 사려 깊게 행정구역 개편을 추진해야 한다.
강황선 건국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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