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최고경영자(CEO)의 과다한 보수가 사회적 논란이 되면서 다시 CEO의 소양과 윤리 경영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금융위기와 월가 CEO의 몰락은 연봉을 많이 받는 CEO보다 지속 가능성을 생각하며 사회에서 존경 받는 CEO가 더 부각되는 계기가 돼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또 CEO의 도덕과 윤리 경영에 대한 시스템적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지난 금융위기 과정에서 전 세계 CEO는 수난시대를 맞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 최고 부자들을 대상으로 한 투자 관리로 유명한 '록펠러 앤 코' 그룹의 제임스 맥도널드 CEO는 최근 총기 자살로 숨진 채 발견됐다. 증권관리 당국이 고객들에 대한 사기 혐의로 기소된 맥도널드 CEO와 회사에 대한 조사를 강화해 온 것이 그가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된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폴크스바겐 인수에 실패하고 사임한 벤델린 비데킹 전 포르쉐 CEO도 주가조작 혐의로 독일 검찰의 조사를 받을 처지이다.
또 미국의 재취업 알선업체인 '챌린저, 그레이&크리스마스'에 따르면 지난해 1,484명의 CEO가 회사를 떠났다. 이는 앞선 3년치를 합친 것보다 많은 수치다. 금융 위기 장본인의 모습들도 궁상맞긴 마찬가지이다. 리먼 브러더스에서 쫓겨난 리처드 풀드 전 CEO는 CNBC 방송 선정 '역사상 최악의 CEO' 1위에 오른 데 이어 현재 40여건의 소송에 연루돼 있는 상황이다.
1월 뱅크오브아메리카(BoA)에 매각된 미 최대 모기지 회사 컨트리와이드의 안젤로 모질로 전 CEO는 지난해 1,000만달러 이상의 연봉을 받고 스톡옵션을 행사해 1억2,150만달러를 가져갔으나 컨트리와이드 주주들로부터 집단소송을 당한 상태다. 또 모기지 위기가 시작되기 직전 회사 주식을 판 혐의로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조사도 받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의 금융 부문 몇몇 CEO도 불명예 퇴진의 상처를 입었다.
이처럼 한 때 모든 직장인의 꿈인 CEO의 말로가 추해지자 경영능력에 앞서 바람직한 CEO로서 소양과 도덕적 가치를 중시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25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열린 제38회 한국무역협회 최고경영자 조찬회에서 김효준 BMW코리아 대표는 "미래 자본주의는 정신적, 도덕적 가치가 중요하며 앞으로의 글로벌 시장경쟁에선 철학과 가치를 추구하는 기업만이 존속 가능하다"며 "정신적 가치(Spiritual Value)를 경영 철학에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최근 해외 유수의 경영학석사(MBA) 학생들이 금전적 이득이 많은 기업보다 본인의 내재적 가치나 철학과 가장 잘 맞는 회사를 선택하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23일 서울 남산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전경련 부설 국제경영원(원장 정병철)의 YLC위원회 조찬회에서 황상민 연세대 교수도 "리더십은 자신에 대한 이해에서 시작되는 것이며 끊임없는 자기 연마의 과정이다"라고 역설했다.
윤리경영 선언문에 서명하는 CEO도 늘어나고 있다. 우리나라의 윤리경영 확산과 윤리적 기업문화를 이끌어나갈 다자간 포럼으로 2003년 출범한 윤경SM포럼의 경우, 윤리경영 선언 참여 CEO가 2004년에는 12명에 그쳤으나 올해에는 71명으로 증가했다.
신철호 성신여대 교수는 "통상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 시스템의 결함으로 인한 잘못일 확률이 94%인 데 비해 사람의 실수로 인한 잘못일 가능성은 6% 불과하다"며 "CEO 스스로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적용할 것이 요구할 것이 아니라 시스템상으로 윤리 경영을 펴는 CEO가 존경 받을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단기적 성과에 매몰될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관점에서 CEO의 성과를 측정하고 이에 합당하는 보수를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제시했다.
박일근기자 ikpark@hk.co.kr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