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오바마가 백악관 근처에 새로 문을 연 농산물 직판장을 찾은 사진이 인터넷에 널리 퍼졌다. 쇼핑 카트 대신에 유럽식 바구니를 들고 지난 봄 백악관 뜰에 만든 채소밭에서 나온 야채와 과일을 고르며 상인과 대화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오바마 대통령도 얼마 전 학교 급식에 가공식품을 쓰지 않고 주변에서 키운 야채와 과일로 바꾸는 방법을 고민하자고 말했다. 이번 G20 정상회담 때는 피츠버그시 주변에서 나온 음식 재료를 쓰기로 했다. '웰빙 대통령 일가'이다.
그러나 웰빙 식품의 보급에는 한계가 있다. 키우는데 품이 많이 드는 유기농 야채와 과일은 값이 비싸 서민층은 엄두를 낼 수 없다. 실업률이 10% 가까이 되는 요즘 형편에는 더욱 그러하다. 유기농 작물이 아니라도 농산물 직판장에서 파는 향토 야채나 과일은 대형 마트의 일반 농산물보다 비싸다. 유기농 자연식품을 파는 수퍼 체인점 은 고소득ㆍ 고학력층이 이용한다는 엘리트 이미지를 씻고 대중적 브랜드로 변신을 꾀했으나 아직 성공하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웰빙 식품 또는 음식은 경제적 계층 차이를 넘어 정치이념적 차이와 갈등의 상징처럼 되고 있다. 2000년대에 들어와 정치이념과 생활방식이 결합되는 추세에 따라 개인의 의식주를 보면 그 사람의 정치적 경향을 금방 알 수 있다. 도시에 사는 독신 고학력 고소득층은 거의 다 민주당 지지세력에 속하고, 이들은 웰빙 음식을 선호하고 와 같은 유기농 자연식품 수퍼를 이용한다. 반면 작은 도시 또는 교외에서 가정을 이루고 사는 중산층은 공화당 지지자가 많고, 이 사람들은 값싼 음식을 선호하고 와 같은 대형 마트를 이용한다. '바구니 대 쇼핑 카트'로 갈린 사회가 된 셈이다.
이런 현실에서 미셸 오바마의 농산물 직판장 방문에 바구니파(派)는 박수를 치지만 쇼핑 카트파는 소외를 느낀다. 대통령의 웰빙 발언도 마찬가지다. 다음에 쇼핑 카트파 대통령이 나오면 대형 마트에서 서민층과 대화하는 모습이 인터넷에 널리 퍼지고, 이번에는 바구니파가 소외를 느낄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 내외가 한국에 오면 내가 사는 동네의 통인시장을 방문하도록 권하고 싶다. 청와대에서 가깝지만 백악관 부근의 농산물 직판장과 달리 서민층이 많이 이용하고 신선한 야채와 과일이 가득하다. 곡물과 양념도 자연상태로 팔고 아침마다 갓 만든 두부와 떡을 파는 가게도 있다. 하지만 이 곳을 찾는 손님들이 한나라당과 민주당 어느 쪽을 지지하는지는 알 수 없다.
오바마 내외가 통인시장을 찾는다면 한국 음식이 김치만 있는 게 아니라 아주 다양하다는 사실에 놀랄 것이다. 야채를 좋아하는 오바마 여사는 나물 반찬, 배와 사과, 전통차를 좋아할 듯하다. 또 맵고 발효시킨 김치보다 갓 버무린 싱거운 김치를 즐길 것이다. 한국 전통식품은 그 자체가 웰빙이다. 식이섬유가 많고 콜레스테롤과 당류는 적다. 생선과 고기의 양도 적당하다. 웰빙 새싹 비빔밥은 물론 '그냥 비빔밥'도 으뜸가는 웰빙 음식이다.
요즘 많이 이야기하는 '한식의 세계화'도 오바마 내외와 같은 바구니파 사이에 인기를 끌도록 하는 게 비결이 아닐까 싶다. 그 첫 단계는 '우리 김치'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한국 음식의 다양한 '웰빙함'을 자랑하는 것이다. 그와 더불어 한국 사회가 갈등이 많지만 아직 음식으로 완전히 사회가 갈리지 않은 것을 자랑해도 좋겠다.
로버트 파우저 서울대 국어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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