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창단 이래, 극단 동(動)은 조용했으나 뜨거웠다. 그러잖아도 난해한 부조리극을 해체와 파격으로 덧씌웠던 장 주네의 '하녀들', 카프카의 '변신' 등 초창기 무대에서부터 그들은 실험정신을 유감없이 과시했다.
날카로운 실험정신으로 가득찼지만, 세상은 알아보았다. 거창연극제, 변방연극제 등 연극계의 바깥에서 축적해 온 지지에 힘 입어, 지난해부터는 대한민국연극대상 무대예술상을 수상하는 등 중심부의 적극적 평가를 확보하기 이르렀다.
이제 그들은 두 편의 다른 작품을 서울의 중심부에 잇달아 올리는 데까지 왔다. 10월 20~25일에는 세계국립극장페스티벌의 국내 우수작으로 뽑힌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11월 4~8일에는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초청작으로 '테레즈 라캥'을 아르코소극장에서 올린다. 한국 연극의 중심 무대 두 곳을 점령하게 된 셈이다.
이를테면 기성 극단이 됐는데도, 그 결기는 여전하다. 윌리엄 포크너 원작으로 1920년대 대공황기 미국 남부 농촌 마을의 이야기인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의 무대는 같은 시기인 일제 강점기의 북간도 땅으로 치환됐다. 국내 초연작인 '테레즈 라캥'은 곳곳이 살인과 변태의 냄새로 일그러져 있다. 매체 아니면 사이버의 논리가 침탈해 오는 이 시대, 연극의 항거다.
●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10월 20~25일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는 친정 묘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아사한 어머니를 넣은 관을 매고 9일 동안 헤매는 이야기다. 소나기로 불어난 강물에 관이 떠내려가는 등 온갖 고생을 하던 아들들은 결국 관을 불살라 버린다.
무대는 전체가 거대한 장례식장이다. 8개의 장으로 나뉜 연극은 정화, 초혼, 발인과 행진, 하관 등 장례 순서로 짜여져 있다. 원작 소설은 15명의 인물이 등장해 59개의 독백으로 풀어가지만, 연극은 11명의 배우가 보다 다듬어진 언어로 살려낸다.
서울대 국문과 박사 과정의 옌볜 동포 김춘자씨와 한국방언학회 회원인 최명옥 서울대 국문과 교수의 작업 덕에 무대는 완전히 함경도로 거듭난다. 현재 남한에서 접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함경북도 말인 셈인데 그러다 보니 정작 관객들이 제대로 알아듣지 못해, 일부 표준어로 바꾸는 절충이 불가피했다. 화~금 오후 8시, 토 3시 7시, 일 4시.
● 테레즈 라캥 - 아르코 소극장 11월 4~8일
에밀 졸라의 작품으로 현대 연극의 출발점이라고도 평가되는 '테레즈 라캥'의 배경은 유럽이다. "강에 빠져 죽었다고 다른 죽음보다 더 행복하거나 불행하지 않아. 다만 우린 살아있을 뿐이야. 그러니 어서 키스해. 어서! 좋아. 우리 사이에 아직도 죽은 그 애가 누워있다 이거지! 좋아." 남편의 친구와 짜고 남편을 죽인 여자, 파멸의 끝은 어딘가.
붉은 칠이 된 목제 침대와 투명한 아크릴판으로 분할된 무대에서 배우들은 짐승처럼 싸우며 내면에 숨은 욕망을 내비친다. 연출자이자 극단 대표인 강량원씨는 "인간의 고통이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 가능한지를 시험해보고 싶었다"며 "삶을 살아내는 동물적 몸짓 속에 숨은 신성함을 봐 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평일 오후 8시, 토 3시 7시. 일 4시 (02)766-6925
극단 동이 2007년 이래 운영해 오고 있는 '월요연구실'은 이 극단 배우들의 몸을 거듭나게하는 현장이다. 그들은 드라마나 현란한 볼거리가 아니라, 표현주의적 마임 등 순수한 몸이라는 도구를 통해 연극 정신을 되살리고자 한다. 장치는 배제한 채, 젊은 연극인들의 실험정신만으로 객석과 교감하자는 목표다. 이번 무대는 그 종합 시험대인 셈이다.
장병욱 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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