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일터愛] 수입 중고차 시장의 포청천 품원의 성능 점검반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일터愛] 수입 중고차 시장의 포청천 품원의 성능 점검반

입력
2009.09.28 01:44
0 0

24일 서울 양재동의 국내 최대 규모 수입 중고차 매매 장터 '오토갤러리' 내 차량 성능 점검실. 1억5,000만 원이 넘는 수입차를 두고 점검반원과 딜러(원래 주인으로부터 수입차를 사들여 이를 새 주인에게 파는 중개 매매 업자) 장모(44)씨의 신경전이 한창이었다.

공격. "앞 범퍼 사고 난 적 있죠" 로 시작한 점검반원의 날카로운 질문들이 쏟아진다. , .

방어. 점검반원의 선제 공격에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떼지 못하던 딜러. . 1.

2차 공격. 정색을 한 딜러의 반격에 점검반원은 엷은 미소를 띠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 . 2~3.

승부 끝. 눈에 보일 듯 말 듯 한 부분까지 콕콕 . . . . . .

장씨가 말한 사람들은 국내에서 단 하나뿐인 수입 중고차 전문 성능 점검 회사 품원의 성능 점검반원들이다. 이들은 중고차 시장에 매물로 나온 수입 중고차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16개 분야, 135개 항목으로 나눠 철저히 해부ㆍ점검해 딜러들이나 차를 사고 팔고자 하는 이들이 중고차 값을 정하는 데 참고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이들은 수입 중고차 시장에서 '포청천' 이라 불린다. 사고 여부를 숨기거나 중고차 가격을 부풀리려는 이들도 점검반의 판정 결과에 옴쭉달싹 하지 못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품원이 수입 중고차 성능 점검에 나선 건 2003년. 수입 중고차 프랑스 국제적 품질인증 기관 BV(뷰로베리타스) 한국 지사의 자동차 검사 팀이 독립했다.

특히 수입 중고차의 위장 판매가 갈수록 늘고 가격에 대한 불만과 논란도 쏟아지고 있기 때문에 이들을 찾는 발길 역시 끊이질 않고 있다. 경력 5년의 최경학(31) 대리는 "현재 중고차의 사고 유무를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보험개발원의 홈페이지에서 카 히스토리(사고이력)를 파악하는 것"이라며 "하지만 이 경우도 보험 처리를 했을 경우만 기록이 남는다"라고 설명했다. 보험 처리를 하지 않으면 사고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이 없고 눈으로 봐서는 일반인이나 딜러 모두 완벽하게 차 상태를 파악하기는 불가능하다는 것.

때문에 이들 포청천을 찾는 발걸음도 갈수록 늘고 있다. 검사반원 한 사람이 하루 평균 20대를 들여다 봐야 할 정도다. 점검 경력 5년의 서태성(37) 과장은 "오토갤러리 소속 수입차 딜러는 물론 전국의 다른 수입차 매매 시장의 딜러도 차를 맡긴다"며 "팔기 전 자신의 차 상태를 점검해 보려는 일반 고객들까지 많이 온다"고 말했다. 게다가 한국소비자원, 경찰청은 물론 언론사에서도 사고 여부를 두고 논란이 있는 차량을 이들에게 맡긴다고.

검사반원의 부담은 그만큼 클 수밖에 없다. 수 천 만원에서 수 억 원을 넘나드는 중고 수입차의 가격이 사실상 이들의 점검 결과에 좌지우지 되기 때문. 작은 흠 하나 발견될 때마다 최소 몇 백 만원이 떨어지고 수입차를 사고 파는 사람이나 딜러 모두 민감해 한다.

3년차 양승진(28)사원은 "특히 주행 1년, 주행 거리 1만 ㎞미만의 중고차의 경우 흠이 없으면 새 차나 다름 없는 값에 팔 수 있기에 민감해 한다"라며 "뻔히 사고로 난 흔적을 고친 표시가 나는 데도 숨기려는 것도 이들"이라고 말했다.

심판관의 판단을 순순히 따르는 건 심판이 권위와 신뢰를 갖고 있기 때문. 그 신뢰는 물론 그냥 얻어진 게 아니었다. 특히 초반에는 많은 이들이 성능 점검과 정비의 차이를 잘못 이해한 탓에 항의가 끊이질 않았다.

정비는 차가 정상적으로 굴러가는데 지장을 주는 문제가 겉으로 드러났을 때 이를 고치는 것이고 성능 점검은 당장 눈에 드러나는 이상이 없을지라도 깊은 곳에 숨어 있는 문제를 찾아내는 것이기에 같은 차를 보고도 정비사와 성능 점검반의 결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게 윤 부장의 설명.

이상 있다는 성능 점검 결과를 들고 정비소를 찾았다 별 문제 없다는 이야기를 들은 딜러나 고객들이 곧장 달려와 성능 점검 결과를 믿지 못하겠다며 항의하기 일쑤였다. 창립 멤버 박현(42) 차장은 "이상도 없는데 성능 점검에서 나온 작은 흠 하나 때문에 차 값 수 백 만원을 날릴 뻔 했다며 흥분한 이들도 많았다"라며 "몸으로 항의하려던 딜러나 고객들을 상대하느라 경찰서를 들락거리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오해와 불신을 이겨내는 길은 딱 하나. 실력과 품질을 키우는 수밖에 없었다. 국내에서 몇 안 되는 차량 기술사 유충상 사장부터 일본 유학파 박 차장을 비롯해 점검반원 모두 차량 정비 경력 3~5년에 점검 경력도 3년 이상이다. 송영창(31)사원은 "갈수록 늘어나는 수입차 마다 특징이 있기 때문에 틈틈이 낮이고 밤이고 같이 모여서 새 차 분석하느라 쉴 틈이 없다"라며 웃었다.

서울오토갤러리자동차매매조합회 김진한 부장은 "가는 곳마다 수입 중고차 가격이 달라 아무도 믿지 못하겠다는 불신이 많은 상황에서 성능 점검반의 활약으로 위장 매매, 허위 매매 등 수입 중고차 시장의 악습이 많이 줄고 있다"고 말했다.

'신(神)의 경지'라며 치켜 세우지만 이들도 100% 완벽할 수만은 없는 노릇. 종종 점검 결과에 문제가 발견되면 즉시 보험으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 이 때는 해당 점검원은 물론 모두 함께 반성과 함께 철저한 '복기(復碁)' 를 진행한다고 한다.

박 차장은 '깨끗한' 중고차 매매 시장을 만들기 위해 보다 근본적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일본이나 유럽 등에서는 중고차 모두 성능 점검을 반드시 받도록 하는 동시에 사고 이력을 소비자에게 무조건 알리도록 의무화하고 있다는 것. "포청천이라는 별명이 영광스럽지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차를 잘 살피고 상태를 알려주는 전달자"라는 박 차장의 겸손한 말이 중고차 시장상황을 누구보다 잘 아는 고수의 지적처럼 들렸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