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고(國庫)는 허술했고, 나랏돈은 쌈짓돈이었다. 교수, 군인, 경찰관, 승려, 시민운동가, 농민, 임산부 등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나랏돈을 손쉽게 빼먹을 수 있었다. 복지예산, 공사비, 기술지원금, 일자리 창출 지원금 등 이들이 손댈 수 있는 돈은 도처에 널려 있었다. 검찰은 이런 부패비리에 대한 '무관용 원칙'을 재확인했다.
27일 대검 중수부(부장 김홍일)가 발표한 국가 예산ㆍ보조금 비리 수사 결과에 따르면, 공무원이 예산을 횡령하거나 보조금 수급자가 이를 개인적 용도로 사용하는 등 나랏돈 유출이 심각한 상황인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은 지난해 3월부터 전국 일선 검찰청에서 1년 반 동안 관련 수사를 진행해 150명을 구속 기소하고 546명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검찰이 이 과정에서 확인한 유출 예산 규모만 1,000억여원에 달했다.
비리 유형을 보면 국가 보조금 및 출연금을 빼돌리는 사례가 가장 두드러졌다. 유명사찰인 전남 화엄사 전 주지는 이미 끝난 공사를 다시 시작하는 것처럼 서류를 꾸며 문화재 보조금 24억원을 유용했다.
서울 양천구청의 공무원 안모씨는 장애인에게 지급되는 보조금 액수를 부풀려 신청해 무려 26억5,000만원을 빼돌린 다음 벤츠 승용차와 아파트를 구입하는 등 호화생활을 했다.
어선 감척 보조금을 빼돌린 선주, 유가 보조금을 불법 수령한 운수업자ㆍ농민들도 덜미를 잡혔다. 영농조합 간부와 농어민 등이 지역 특화사업 보조금을 불법 수령하거나, 중소기업 대표가 국책연구원으로부터 기술지원금을 받아 횡령하는 행위도 광범위하게 적발됐다.
국가예산에 직접 손을 대는 '간 큰' 공무원들도 있었다. 수원지검 성남지청은 올해 5월 육군 모부대 K원사가 양곡업자와 짜고 군량미 3,550가마(시가 2억7,000만원)를 빼돌린 사실을 적발했다. 이들이 3년간 차떼기 수법으로 시중에 내다 판 5톤 트럭 30대 분량의 군량미는 공수ㆍ특전 훈련을 받는 특전사 장병 등에게 제공될 예정이었다.
서울 한 경찰서 복지운영담당자인 경찰관 B씨는 식당, 매점, 자판기 등에서 나오는 수익금 4,000여만원을 횡령한 혐의로 7월에 기소됐다.
공공기금 유용 사례도 다수 확인됐다. 신용보증기금에서 보증을 받아 대출받은 10억원을 빼돌린 회사 대표, 사례비를 받고 명의만 빌려주는 이른바 '바지 대출자'를 내세워 주택금융기금의 보증을 받은 뒤 전세금을 대출받는 식으로 20억원을 빼돌린 브로커도 있었다. 이들은 이렇게 마련한 돈으로 부동산 구입이나 카드대금 결제를 한 것은 물론 도박자금이나 성형수술비로도 사용했다.
대검 중수부는 "사후 심사가 미흡하다 보니 허위서류 제출이 일상화되는 등 나랏돈이 일종의 눈먼 돈 취급을 받고 있다"며 "이들 범죄가 가볍게 처벌되는 제도적 문제에 대한 개선방안을 마련하고 나랏돈을 빼돌리는 비리에 대해서는 무관용 원칙으로 엄벌하겠다"고 밝혔다.
이영창 기자 anti092@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