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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송이만 찾으시오, 능이도 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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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송이만 찾으시오, 능이도 있소

입력
2009.09.25 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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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닥하다간 총에 맞아요(봉변당한다는 뜻)." "농이 심하다"고 했더니 되레 꾹 눌러 답한다. "어쨌든 전쟁은 맞더래요." 강원도는 지금 전시(戰時)란다. 깊은 산골 천막에 웅크려 밤새 요충지를 지키는가 하면 작전(?)엔 꼭 3, 4명이 투입된다. 흉흉한 소문도 잇따른다. "아랫마을 OO가 산에서 버섯 따다가 추락사했다는데 사고가 아닌 것 같다며, 꺼림칙해."

#20일 강원도 버섯 경매장. 자연산 송이(1㎏기준) A급은 83만6,000원, B급은 60만원, C급은 40만원에 낙찰됐다. "송이가 대풍일 것"이라며 언론보도까지 냈던 서울의 모 백화점 바이어는 줄행랑을 놓았다고 한다. 특급 송이는 황금 띠를 두르기 무섭게 상경했다. 그 짧은 와중에도 상인의 휴대폰은 불이 났다. 녹음기라도 틀어놓은 듯 대답은 똑같다. "송이요? 없다니까요!"

한가위를 앞둔 강원도는 '버섯 전쟁'이 한창이다. 도화선에 불을 댕긴 주범은 송이다. 가뭄 탓에 생산량은 줄고, 가격은 치솟았기 때문.

대목을 잡기 위한 버섯 채취자의 경쟁도 치열할 수밖에 없다. 하나라도 더 캐기 위해 더 깊이, 더 일찍 산으로 들어가다 보니 안전사고는 늘었다. 도둑이 기승을 부려 집에도 못 들어간다. 부모 상을 당해도 버섯의 터전인 산에 화재가 난다면 불부터 끄겠노라고 장담한다.

이달형(34)씨는 "예전엔 혼자 다녔는데 뱀에게 물릴 수도 있고 멧돼지 등 야생동물의 습격을 받을 수도 있어 요즘엔 꼭 조를 짜서 움직인다"고 했다. 그러나 "산에서 맞닥뜨리면 진짜 무서운 건 사람"이라고 귀띔했다. 둘러메고 오는 버섯이 에누리없이 돈이기 때문이란다. 이곳 사람들은 매년 꼭 벌어지는 추락사고를 송이암투로 인한 사건으로 받아들일 정도다.

송이의 한계

없어서 못 파는 건 '자연산'이란 송이의 태생과 얽힌 역사 때문이다. 비가 많이 와야 송이가 많이 올라오는 데 갈수록 우리 날씨는 가물다. 인공재배라도 해야 할 판인데 세계 유일의 송이 수입국인 일본조차도 100년 넘게 연구했지만 도로아미타불이니 언감생심이다.

설상가상 명절 귀한 선물로 알려지면서 수요는 폭발했다. 사실 송이는 1995년까지만 해도 전량 수출되는 '외화벌이' 수단이었던 터라 수출물량만 맞추면 그만이었다. 96년부터 하품(下品)이 순차적으로 국내 유통되더니 21세기 들어서야 상품(上品)도 맛볼 수 있게 되면서 대중화했다.

지게로 지고 내려올 정도로 많던, 생채기난건 갖다 버렸다던 송이의 수급이 한계상황에 봉착한 셈. 자연이 매년 은혜를 베풀면 모를까, 현재 생산량(1년 200~500톤)으론 어림없다.

능이의 반격

올 추석부터 송이의 대항마로 나선 게 능이(能栮)다. 충북과 강원 일부에서나 맛보던 녀석인데, 롯데백화점이 한가위선물로 첫 선을 보였다. 역시 자연산이라 물량이 적어 200세트(㎏당 20만원선) 한정이다. 홍영춘 바이어는 "창립 30주년을 맞아 수소문 끝에 찾아낸 명품"이라고 했다.

능이의 상품화는 박영학(51) 송이산영농조합법인 대표가 맡았다. 그는 관련 특허만 10개, 상표등록은 수십 건에 이르는 자연송이 가공부문 신지식인이다. '송이 박사'인 그가 능이를 차기 주자로 점 찍은 건 효능 때문이다.

그는 "단백질 분해효소가 많아 고기를 먹고 체했을 땐 즉효가 있고, 혈중 콜레스테롤을 떨어뜨리는 성분과 암세포를 억제시키는 성분을 다량 함유한 게 능이"라고 했다. 능이와 쇠고기를 재어 하룻밤을 지내면 고기 형체가 사라질 정도란다.

사실 버섯의 으뜸은 송이가 아니라 능이다. 예로부터 '일 능이, 이 표고, 삼 송이'라는 말이 전해 내려올 만큼 약재나 진귀한 식재료로 사용됐다. 다만 귀엽고 고운 자태를 지닌 송이와 달리 생긴 게 너무 못나고 벌레가 많이 꼬여 외면당했을 뿐이다.

박 대표는 "능이 자체를 모르는 이들이 많아 대중화하고 싶었다"라며 "앞으로 제대로 성분검사도 해보고, 송이의 절반수준인 보관기간을 늘리는 연구도 하겠다"고 했다. 그가 송이 박사가 된 결정적인 연구성과도 송이의 장기보관 방법이었다. 그는 능이 물량을 맞추기 위해 며칠째 집에 못 들어가고 있었다.

양양=글ㆍ사진 고찬유 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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