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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 우리가 원하는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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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 우리가 원하는 광장

입력
2009.09.25 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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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하늘이 높고 푸른 어느 날 오후, 서울광장에서 청계천을 지나 광화문광장까지 걷기로 했다. 한가하게 광장의 여유를 즐겨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광화문 광장 끝까지 걸어가 다시 서울광장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서울 시민들이 원하는 광장이 과연 이런 것일까 속이 상했다.

서울광장에선 '서울 장터'가 열리고 있었다. 각종 가공식품 건어물 과일 야채 꽃 등 전국 10개 시ㆍ도의 특산품을 팔고 있었는데, 그 품목이 1,499종이나 된다고 했다. 서울광장에서 열리는 행사들이 거의 다 그렇듯이 시끄럽고 복잡했다. 악을 쓰는 유행가 소리에 귀가 아팠다.

'세계 최대의 중앙분리대'

광화문광장 지하 출입구 쪽에서도 광고 음악이 요란했다. "서울은 정적(靜寂)이 없는 도시"라고 불평하던 한 독일인 생각이 났다. 서울 뿐 아니라 전국 어디서건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서는 귀를 찢는 유행가 소리가 들린다. 어떤 축제도 그저 어슬렁거리며 구경을 하고 휴식을 즐기려는 사람들을 용납하지 않는다. 서울의 도심에 광장이 생기면서 제일 먼저 따라 온 것이 음악 소음이다.

지난 8월 1일 개장한 이래 많은 비판이 쏟아지고 있는 광화문광장은 역시 실망스럽다. 나는 그 곳에 갈 때마다 상상력의 빈곤을 절감하곤 한다. 광장을 개장하기 전 TV뉴스들은 이순신 장군의 해전(海戰)을 연상시키는 물줄기라면서 분수를 보여줬는데, 막상 가보니 빈약하기 짝이 없었다. 저 분수들로 해전을 표현하려 했다면 상상력이 지나쳤던 건지 부족했던 건지 판단이 안 선다.

전체가 1만8,000㎡인 광화문 광장은 폭 34m 길이 340m의 길쭉한 모양이다. 광장에 실망한 사람들이 '세계 최대의 중앙분리대'라고 혹평하는 것은 광장이라고 하기엔 너무 폭이 좁고, 내용물이 빈약하고, 4면이 길로 둘러싸여 있고, 어느 곳 하나 발길을 붙들거나 앉아서 쉬고 싶을 만큼 마음 끌리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광장은 입구의 잔디밭, 충무공 동상과 900㎡의 분수대, 세종대왕 동상, 3,000㎡의 플라워 카펫으로 이어진다. 국내 최대 규모라는 꽃밭은 전통 단청문양을 본떴고, 13종 22만4,537포기의 꽃을 심었다고 한다. 꽃의 포기 수는 조선의 한양 천도일인 1394년 10월 28일에서 광장 개장일인 2009년 8월 1일까지의 날짜와 같다고 적혀 있다.

광장을 만들기 전 도로의 중앙에 늘어서 있던 아름드리 은행나무들은 일제시대 총독부와 신사를 잇는 축이었다는 이유로 뽑혀져서 도로변으로 옮겨 심었다. 그 길의 나무그늘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초가을 땡볕이 내리쬐는 광화문 광장은 아파트 공사장의 빈 땅처럼 삭막하기만 하다. 햇볕을 막는다고 곳곳에 만든 파라솔 모양의 조형물은 장난감처럼 보인다.

광화문 광장에는 그 동안 수백만 명이 찾아왔다고 하는데, 그들의 마음을 잡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한양 천도일에서 광장 개장일까지를 어렵게 계산해서 꽃을 심었다는 플라워 카펫 정도일까. 그러나 요즘 우리나라의 꽃 장식은 전국 어디서나 지나칠 정도여서 광화문의 울긋불긋한 꽃밭이 특별할 것도 없다. 그리고 겨울에는 꽃밭마저 사라질 텐데 무엇으로 공간을 채울 건지 걱정스럽다.

왜 이런 광장을 만들었나

서울시는 육조(六曹)거리 재현 등의 계획을 갖고 있었지만 그 광장은 무엇을 하기에도 규모가 작고 여건이 불리하다. 세종문화회관과 붙여서 광장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는데, 도로 속의 섬 같은 광장에 서면 그 주장이 옳았고 충분한 논의가 부족했다는 생각이 든다.

서울광장에도 광화문광장에도 광장의 자유로움과 휴식이 없다. 그래서 많은 시민들은 "왜 막대한 돈을 들여 저런 광장을 만들었는가"라고 묻는다. 특히 광화문 광장은 너무 싱겁고 빈약하다. 그 애매한 공간을 무엇으로 채워서 시민들이 사랑하는 광장을 만들어갈 것인가. 이제라도 원점으로 돌아가 폭넓게 의견을 들어야 한다. 짜깁기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장명수 본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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