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1년 조선을 찾은 독일 베네딕도회 신부와 수도사들이 멍석 위에 앉아 식사하는 빛 바랜 사진이 얼마 전 신문에 실렸다. 국과 서너 가지 반찬이 놓인 소반 위에서 맨 먼저 눈에 띈 것이 커다란 사기 밥그릇이었다. 그 폭이 숟가락이나 젓가락을 든 신부나 수도사의 얼굴보다 넓다. 고봉으로 담았다면 사람 머리통 하나는 될 만했다. 그로부터 한참 세월이 흐른 1970년대까지도 농촌의 밥그릇은 별로 작아지지 않았다. 푹 퍼져 헤싱헤싱한 보리밥이 대부분이긴 했지만, 그 큰 그릇에 가득한 밥을 후딱 해치우고 밥그릇을 내밀던 아이들의 모습이 꿈같다.
▦서울에서 밥 공기란 걸 처음 보았을 때 문득 공깃돌을 떠올렸다. 촌 밥그릇과 서울 밥그릇의 차이가 워낙 컸다.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밥을 먹었는데, 두어 숟갈 뜨고 나면 공기가 비어 몇 번이고 새로 받았다. 나중에 4인 가족의 두 끼 식사였음을 알고는 다시 그 집에 가기가 민망스러웠다. 시골에서는 그저 남들과 비슷한 양이었는데도 한동안 '거식이'라는 별명이 따라다녔다. 지금은 그때에 비해서도 더 작아진 공기 하나만도 벅차다. 한창 때인 아이들도 두 그릇이 고작인 걸 보면 나이보다 버릇이 밥의 양을 결정하는 모양이다.
▦보리밥 대신 찰진 쌀밥이 넘치고, 밥이 아니어도 영양 섭취가 지나칠까 걱정하는 세상이다. 다이어트 바람이 잦아들 기미가 없고, 아침밥을 거르는 학생과 직장인은 늘고 있다. 밥의 양이 나날이 줄어들고 있으니 쌀 수급 불균형이 점점 더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농림수산식품부에 따르면 국민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1998년 99.2㎏에서 지난해 75.8㎏으로 줄었다. 특히 농가 인구의 소비량이 143.7㎏에서 122.5㎏으로 14.74% 감소하는 데 그친 반면 비농가 인구는 94.5㎏에서 72.4㎏으로 23.39%나 줄었다.
▦이대로라면 빵이나 국수, 과자 등을 쌀로 만드는 등의 소비 확대 방안도 이내 한계에 부닥친다. 지난해 대풍작으로 전년 대비 43만톤, 평년 대비 21만톤이나 쌀 생산이 늘어난 데 따른 후유증도 크다. 정부가 10만톤을 덜어냈는데도 8월 말 기준으로 26만톤의 재고가 쌓여 있고, 올해 작황도 평년을 웃돈다. 벌써 산지 쌀값이 떨어지고, 농민들은 황금 들판을 트랙터로 뭉개며 대북 쌀 지원을 촉구하는 시위에 나서고 있다. 근본적 정책 대안이 필요하지만, 밥그릇을 지금보다 조금 크게 만들기만 해도 적잖은 도움이 될 듯하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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