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나이 다다시(柳井正) 패스트리테일링 사장, 아이작 할폰 망고 CEO, 안셀름 반 덴 오베란트 코르테피엘그룹 회장….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최근 한국을 방문했거나 방문 중인 글로벌 SPA 브랜드(제조와 소매 유통을 겸하는 패션 브랜드)의 대표들이다.
내년 2월 말에는 스웨덴을 대표하는 패스트 패션 브랜드 H&M의 아시아총괄 사장도 국내 1호점인 명동 눈스퀘어점 개점에 맞춰 방한한다. 세계적인 SPA 브랜드 수장들의 잇따른 방한은 서울이 글로벌 SPA 브랜드들의 격전지로 급부상했음을 뜻한다. 한국 시장의 어떤 매력이 이들을 끌어들이는 걸까.
■ 글로벌 SPA 브랜드, '한국은 기회의 땅'
자라에 이어 연 매출 4조원 대를 올리는 스페인 2위 패션 업체 코르테피엘그룹의 오베란트 회장은 최근 자사 대표 SPA 브랜드 '스프링필드'의 한국 첫 매장인 타임스퀘어점을 둘러보기 위해 방한한 자리에서 "한국은 기회의 땅"이라고 말했다.
그 이유로는 세 가지를 들었다. 5,000만명에 달하는 인구가 좁은 지역에 밀집해 있고, 그 인구 대부분이 매우 트렌드에 민감하면서 프로투갈이나 폴란드 등 유럽 국가에 비해 4배 이상의 소비 파워를 갖췄으며, 뚜렷한 사계절이 있어 사시사철 옷 소비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스프링필드의 국내 영업권을 갖고 있는 제이케이파트너즈 박진기 대표는 "자라의 대대적 성공 이후 스페인 패션 업체들 사이에서 한국 시장의 높은 성장성에 대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고 말했다.
대대적 한국 시장 공략에 나선 유니클로의 시각도 비슷하다. 유니클로를 내놓고 있는 일본 패스트리테일링의 야나이 대표는 23일 첫 방한 기자회견에서 "한국은 중국과 동남아시아를 잇는 글로벌 전략의 요충지"라고 선언했다. 유니클로는 2005년 국내에 진출한 이래 매년 60% 이상의 고속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또 내년 2월 말 국내 1호점을 낼 예정인 스웨덴 최대의 SPA 브랜드 H&M 역시 최근 지사 설립을 끝낸 상태에서 아시아지역총괄사장 임지를 서울로 정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글로벌 SPA 브랜드들의 한국 입성이 짧은 시간 안에 폭발적으로 이뤄지면서 한국이 아시아 허브로 발돋움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이들의 격전은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 패션 산업의 취약성을 보여 준다는 지적도 있다. 패션ㆍ문화컨설팅업체 CMG의 김묘환 대표는 "100명 이상의 디자이너를 거느리고 주 2회 이상 신상품을 공급하는 글로벌 패션 브랜드들에 비하면 한국 패션 업계는 여전히 시즌 개념에 얽매여 있고 규모의 경제가 어려워 상품 단가가 높다"며 "당장은 대표 브랜드가 들어온 정도이지만 이들 업체가 국내 유통 환경에 익숙해지면 서브 브랜드들도 잇따라 상륙시킬 게 뻔한 만큼 국내 패션 업체의 고민이 커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자라를 내놓은 인디텍스그룹만 해도 '마시모뚜띠' '풀앤드베어' '베르쉬카' 등 9개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고 일본의 패스트리테일링은 '에그녹' '꼼뜨와데꼬또니' '자지에' 등 등 20개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
럭셔리 브랜드 질 샌더의 경우 패스트리테일링이 최대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코르테피엘그룹은 이미 국내에 소개한 스프링필드 외에 '코르테피엘' '밀라노' 등의 브랜드를 갖고 있으며 순차적으로 한국 시장에 선보일 예정이다.
■ 패션 애호가, 선택의 즐거움 활짝
패션 업계의 고민이 깊어지는 것과는 별도로 소비자들에겐 쇼핑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기회가 활짝 열렸다. 유니클로가 4일 오픈한 온라인 플래그십 스토어는 오픈 당일 접속자 폭주로 서버가 다운되는 인기를 과시하며 오픈 3일 만에 3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패셔니스트 김민희를 내세운 전파 광고도 주목을 끌고 있으며, 추석 하루 전인 내달 2일에는 초미의 관심사인 '유니클로 플러스 제이' 라인이 명동점 강남점 압구정점 등 3곳에서 한정 판매된다.
세계적 디자이너 질 샌더와 유니클로가 손잡고 내놓는 제품으로 질 샌더의 품격 있는 디자인을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는 기회라는 점에서 벌써부터 예약 신청이 쇄도하고 있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유니클로는 보다 광범위한 소비자와 만나기 위해 이달 초 이마트 월계점 등 일부 이마트 점포에도 매장을 열었다.
자라는 최근 다소 주춤한 판매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일부 품목에 한해서 판매가를 30% 낮췄다. 유니클로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싸다는 소비자 평가를 받아들인 것이다. 스프링필드는 남녀 의류는 물론, 모자 신발 가방 등 기본 품목과 귀걸이 목걸이 등 다양한 액세서리를 강화했다. 액세서리에 대한 소비자 관심이 높아지는 추세를 반영한 것이다.
최근 한국어판 사이트를 개설하고 소비자와 만나고 있는 H&M은 후발 주자의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초반부터 지미 추, 레이 카와쿠보 등 유명 디자이너와의 협업 라인을 대거 선보일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또 국내 브랜드로는 10월 말 첫 출시 예정인 이랜드의 '스파오'가 유니클로 대비 최소 20% 이상 싼 가격에 청소년부터 중장년층까지를 만족시킨다는 전략을 내놓고 있다. 명동에 1,000평 이상 규모로 들어설 스파오 매장은 규모 면에서 타 글로벌 브랜드를 압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성희 기자 summer@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