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정전협상에서 통역사들은 험악한 분위기 속에 극도로 긴장한 채 통역했습니다. 심지어 서울의 한 고등학교 교사였던 북한측 통역사는 말 한마디 잘못해 처형되기도 했습니다."
스페인 그라나다 대학의 마리아 페르난데스 교수는 24일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개원 30주년을 맞아 이 대학 국제관에서 열린 '통번역의 새 지평' 국제학술대회에 참석해 6ㆍ25 정전협상에 참여한 통번역사들의 증언과 구두인터뷰, 회고록 등 관련자료들을 모아 분석한 논문을 발표했다.
근대통역사를 전공한 페르난데스 교수는 논문에서 "정전협정에 참여한 통역사들이 본래 임무를 벗어나 수많은 기술적 과제와 고된 임무를 담당해 인간적인 고뇌가 엄청났다"며 "당시 통역사들이 협상 전체에 미친 영향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그는 "협상에 참여한 통역사 대부분이 전문적인 통역 교육을 받지 못한 군인이어서 엉터리 통역은 물론 협상의 기술도 부족했다"며 "한국전쟁이 더 일찍 끝날 수 있었는데 상호간 미스커뮤니케이션 탓에 지연된 면도 있다"고 지적했다.
협상 대표들이 서로 간에 갖고 있던 깊은 적대감을 상호 인신공격이나 인종차별적 발언으로 표출하고, 가끔씩 모호한 발언을 의도적으로 해 통역사들을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하기도 했다.
페르난데스 교수는 "1951년 4월부터 1952년 5월까지 유엔군 최고사령관을 지낸 리지웨이 장군은 중국과 북한 협상 대표들을 '배신자 미개인(treacherous savages)'이라 불렀고, 리지웨이 장군 후임인 윌리엄 장군도 이들을 '잡범(common criminal)'이라고 불렀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그는 이어 "거칠고 빠른 비난이 나오고 즉석에서 빠른 대답을 해야 할 경우 통역사는 부담이 커 목이 타고 혀가 느려졌다"며 "그래서 통역사들이 욕설의 어휘를 늘려야 했고, 선동적 단어를 새로 발굴하기 위해 영어사전을 놓고 머리를 맞대기도 했다"고 말했다.
페르난데스 교수는 "언어 폭력뿐 아니라 수 차례의 분노표출과 멸시행위, 심지어 회의장을 박차고 나갔던 대표도 있었다"며 "이럴 때 통역사들의 긴장감과 스트레스가 높아졌고, 통역의 실수는 협상중단, 오폭 등 예상할 수 없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말했다.
그는 아울러 협상에서 모호한 문장을 쓰는 데도 이유가 있었기 때문에 통역사가 더 뜻을 명확히 해서는 안 돼 곤란을 느끼기도 했다고 전했다.
그는 "과거 통역에 대한 기록이 문헌으로 남아있고, 역사적으로도 중요했는데도 이 일을 내가 했다"며 "한국인들이 무력분쟁 해결 상황에서 통역사들의 언어 중재 역할을 되새겨 보고 더 연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민식 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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