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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란의 길 위의 이야기] 말랑말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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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란의 길 위의 이야기] 말랑말랑한

입력
2009.09.24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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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이 그곳 같고 그곳이 이곳 같기만 한 뻘에도 밭이 있고 길이 따로 있다는 걸 함민복 시인에게 들었다. 이렇게 그는 만날 때마다 도시에서는 알 수 없는 소식들을 가져다준다. 얼마 전 그는 강화도 동막리에서 전등사 근처로 거처를 옮겼다. 그곳에서도 높은 곳에 올라서면 저멀리 펼쳐진 바다가 보인다고 한다.

그가 우리 큰애의 손을 잡고 개펄로 들어가 앞으로 기는 게를 잡던 풍경이 선연한데 그애가 중학생이 되었다는 말에 그도 놀라고 십여 년 세월이 흘러갔다는 사실에 나도 놀란다. 그곳에서 그가 사귄 친구들은 대부분 어부들이다. 그들 중 한 명은 자신이 고기 잡는 이야기를 시로 써보라고 졸라대기도 했는데 그 이야기는 '어민 후계자 함현수'라는 시가 되었다.

밤새 지게로 한 가득 숭어를 져 나르던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고기 수가 쭉쭉 빠져 걱정이다. 허벅지까지 푹푹 빠지는 뻘밭에서는 걷는 일 자체가 고역이다. 낙지를 잡고 조개를 캐고, 한 철 뻘밭에서 농사를 짓고 난 사내들은 저마다 일어서서 자신의 허리춤을 내보이며 자랑이 늘어진다. 평소 때보다 허리띠 구멍이 서너 개쯤 줄어들었다. 말랑말랑, 물컹물컹 만만해 보이기만 하는 뻘 속에서의 일이 얼마나 힘에 부치는지 짐작할 수 있다. 허리띠 구멍은 겨울을 지나는 동안 뒤로 하나씩 물러나 봄이 되면 다시 제자리를 찾는다고 한다.

소설가 하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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