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겨울 주인은 나를 데리고 멀리
흔들리던 밤바다에 갔었지
바다는 매번 다른 얼굴의 사람들을 해변으로 보내고
사람들은 조루증 환자처럼 흐느적거리며 사라졌지
주인은 이런 주제의 노래를 전혀 알지 못했지
화음은 세월처럼 부서지고
세월은 검푸른 악장 위로 소리 없이 흘러갔지
주인은 젖은 손으로 나를 쓰다듬다가
지워진 사람들의 얼굴 속으로 말없이 걸어갔지
깨끗하게 사라진 주인의 발자국을 밤새 바라보았지
수평선은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지
해안선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지
모래알이 기관지에 흡입되는 소리
물방울이 심장에 차오르는 소리
비명만으론 음악이 될 수 없다는 걸
그때 알아버렸지
그날 이후 몸 안에도 바다가 생기기 시작했지
● 주인이 사라진 기타는 어떤 노래를 부를까. 시 속의 기타는 주인을 잃고 홀로 바다에 남겨진 기타이다. 그의 줄을 튕기면서 한 시절, 다정한 노래를 불렀던 주인은 어떤 이유인지 알 길은 없지만 바다 속으로 들어갔다. 해변에는 기타만 홀로 남았다.
이 시 속의 기타는 바다물결에 쓸려간다. 음악이 울려나오던 몸은 짠 물에 젖고 해변의 모래도 목청으로 들어온다. 그때 기타는 '비명만으론 음악이 될 수 없다'는 걸 깨닫는다.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가 부르는 모든 노래는 비명일지도 모른다. 그 많은 노래방, 주점에서 흘러나오는 고성방가는 고된 생을 향하여 우리가 버럭버럭 지르는 고함소리일지도 모른다.
주인을 잃은 기타가 해변의 파도 속에서 드디어 휩쓸려 대해로 나갈 때, 스스로가 바다가 될 때, 그때야 비로소 음악은 흘러나온다고 시는 말한다. 나도 어디엔가 내 기타를 두고 여기까지 흘러왔는지 모르겠다. 내가 두고 온 기타는 지금 어디에서 스스로 진짜 노래를 만들어내고 있을까? 가끔 내가 두고 온 기타를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허수경·시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