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문명과 몸의 화해를 꿈꾸며 '2009 서울국제공연예술제'가 열린다. 올해는'아날로그와 디지로그'라는 대주제를 내세웠다. 범람하는 각종 신매체 속에서 이 시대의 배우는 어떻게 인간됨을 3차원의 무대공간 속에 조화시켜 내는지 지켜볼 기회다.
10월 13일부터 11월 21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 예술의전당 등 서울의 대표적 공연장 6곳은 그간 국내 소개되지 않은 연극 19편, 무용 17편, 복합장르 4편의 산실로 거듭난다.
하이 테크놀러지와 공연예술의 조화라는 문제를 두고 세계의 주목받는 예인들이 실험한 결과가 40일 간, 12개국에서 온 40개의 연희단체가 펼쳐 보이는 40개의 작품을 통해 약동한다.
단연 관심을 끄는 것은 해외 초청작들. 못 보던 주제, 생각도 못한 기법의 무대들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다. 예술에서 타성은 죄악이라고 말하는 혁명의 무대들이다. 공연예술은 항상 당대의 인식, 기술의 최전선과 손잡아 왔음을 새삼 깨우치게 한다.
특히 유럽의 무대는 상상치 못한 격렬함으로 상식을 뒤엎는다. 이탈리아 폰테데라 극단의 '햄릿_육신의 고요'의 배우들은 결투 대목에서 펜싱으로 상대 배우의 육체가 움푹 들어갈 정도로 칼을 휘두른다.
미친 햄릿이 오필리아와 나누는 격한 키스는 아예 폭력이다. 바로 올해 이탈리아 비평가상을 받은 문제작이다. 11월 14~15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러시아 모던 드라마 스쿨의 '모스크바, 사이코'는 희랍신화 '메데아'와 히치콕의 영화 '사이코'를 결합한 작품이다. 오늘날 러시아인들이 사는 공간은 멀지 않은 과거 한국의 미아리 텍사스촌을 연상케 하는 쇼윈도로 대체돼 있다.
급격히 해체돼 가는 소련 도시의 모습이 광란적 록 음악 속에 배우들의 섬뜩한 연기로 그려지며, 동시에 그 모습을 샅샅이 쫓아 다니는 카메라맨에 의해 프로젝터로 실시간 투사된다. 11월 9~11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첨단 매체를 적극 등장시킨 초청작들은 인식의 지평을 확장시킨다. 호주의 포스 마죄르 극단은 노트북, 컴퓨터 모니터 등의 디스플레이를 무용수들의 얼굴로 대체, 감정과 심리 상태를 절묘하게 나타내는 현대무용 '디 에이지'(The Age)로 우리 시대의 표정을 포착했다.
에이즈, 테러, 섹스 등에 대한 각계각층의 의견이 무용수의 립싱크와 동작으로 시각화되는 장면은 시사토론과 서커스를 비웃는다. 10월 30~31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캐나다의 르미유 필롱 4D 극단은 '노먼'으로 21세기 무대어법의 첨단을 살재시킨다. 홀로그램의 인간 동영상은 실제 배우와 대화는 물론 설전까지 나눈다.
입체영상의 인물이 물을 따르면 실제 배우가 물 받는 시늉을 하는 등 실재와 비실재의 경계는 허물어진다. 10월 26~27일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일본은 현대와 과거의 시간을 나란히 데려왔다. 세이넨단의 '도쿄 노트'가 기하학적 무대로 현대 일본인들의 일상을 담담히 그렸다면(10월 18, 29일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도가스즈키 극단은 가부키의 미학에 충실한 '시라노 드 벨쥬락'으로 고유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낸다(10월 16~17일 명동예술극장).
지난 3일 티켓 판매가 시작된 이후 구매 행렬이 끊이지 않고 있다. '리체르카레'와 '도쿄 노트'가 매진 테이프를 먼저 끊은데 이어, '옛날 옛적에'와 '세르쥬 효과' 등이 그 뒤를 바짝 쫓는다.
지난해 매진돼 발길을 돌려야 했던 경험 등의 결과로 생긴 학습효과라는 주최측의 설명이다.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 놓거나, 공연 당일 매표소를 찾는 방법이 있다.
장병욱 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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