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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집값 버블 후유증이 두렵다

입력
2009.09.23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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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살고 있는 집을 구입하면서 주택담보대출을 받았다. 3개월 단위로 시중 금리에 연동되는 변동금리형 대출인데, 작년 말 7%대 초반이던 금리가 요즘 4%대 중반까지 떨어졌다. 금리가 오르는 추세여서 다소 조정은 되겠지만, 4%대 금리가 찍힌 통장을 보는 순간 욕심이 났다. 추가 대출을 받아 소형아파트를 산 뒤 월세를 놓으면 이자는 거뜬히 해결할 수 있겠지 싶었다.

세계 각국이 금융위기 이후 엄청난 유동성을 쏟아 부은 만큼 다가올 인플레 부담을 생각하면 아파트 구입은 수지맞는 장사로 여겨졌다. 주변에 봐도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산 뒤 월세를 놓아 원리금을 갚아나가는 경우가 꽤 있다. 남의 돈 꿔서 아파트 사고, 수없이 집을 옮겨가며 부를 축적한 장관들이 수두룩한데 죄의식을 느낄 이유도 없지 않은가.

경기 부양과 부동산의 딜레마

이런 생각이 든 게 꼭 저금리 때문만은 아니다. 최소한 지금 정부에선 집값이 떨어질 리 없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이명박 정부는 부동산경기를 살리기 위해 상당한 공을 들여왔다. 국민의 혈세로 미분양 주택을 매입해 주고 재개발ㆍ재건축 규제를 확 풀었으며 양도세ㆍ종부세 등을 완화했다. 참여정부의 투기억제책을 고스란히 원상복구한 셈이다.

하지만 경기 부양을 위한 유동성 공급과 규제 완화는 투기로 연결돼 우리 경제의 기초체력을 갉아먹는 결과를 초래했던 게 역사의 교훈이다. 1977~78년의 아파트 투기 열풍은 수출 호조에 따른 경상수지 흑자와 중화학공업 육성을 위한 통화량 팽창이 원인이었다. 80년대 후반의 투기 열풍도 저금리ㆍ저유가ㆍ저달러가 가져다 준 유동성 확대의 산물이다.

2001년 이후 장기간 지속된 집값 불안은 세계적인 저금리 추세와 맞물렸다. 외환위기를 겪은 기업들이 차입금 축소에 나서자 은행들이 담보가 확실하고 수익률도 높은 가계대출을 크게 늘린 게 도화선이었다. 은행권 주택담보대출은 2000년 말 54조2,000억원에서 2006년 말 218조3,000억원으로 급증했고, 가계로 풀려나간 돈은 부동산시장으로 몰려들었다. 취득세ㆍ등록세 감면, 소형주택 구입자금 지원 등의 규제완화 조치도 병행됐다.

"지금은 심각한 경기침체와 부동산 과열이 같이 왔기 때문에 현재 상황에서는 거시적인 방법으로 유동성을 줄이는 것은 부동산 투기 억제의 효과가 별로 없고 그 대신 경기를 죽이는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날 우려가 있다." 2003년 6월 당시 박 승 한국은행 총재의 국회 답변 내용이다.

경기를 걱정한 정부는 단기 대출규제에만 매달리다 2년 뒤에야 금리인상 카드를 꺼내 들었지만, 이미 투기성 수요가 걷잡을 수없이 확산된 뒤였다. 저금리는 전세 수요자를 매매로 돌려세웠고, 과도한 대출 부담은 내수 부진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만 키웠다.

올 들어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집값이 급등했던 참여정부 때보다 더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재개발과 뉴타운 건설로 전셋값이 폭등하자, 공급 확대론을 제기하며 분양가상한제마저 없앨 태세다. 주택경기 부양을 위한 대대적인 규제 완화, 확장적 통화정책에 따른 유동성 과잉은 과거 투기 열풍 때와 판박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집값 불안이 우려할 만한 상황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최근 한국의 집값 급등은 비정상적 현상이 아니다"라는 내용의 IMF 보고서를 공개하기도 했다.

조정 없는 급등이 정상적인가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금융위기 이후 집값이 30% 안팎 떨어졌고 가계부채 조정도 이뤄졌다. 금융위기를 예언했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내년에 집값이 12% 더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반면 우리 집값은 별로 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가파른 상승세를 지속 중이다. 이미 서울의 소득 대비 주택가격지수는 10을 넘는다. 10년간 소득을 한 푼도 안 써야 주택을 살 수 있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개인저축률이 4.8%이므로 집 한 채를 사려면 200년 간 꼬박 돈을 모아야 한다.

버블은 언젠가는 꺼지게 돼 있다. 조정을 거치지 않은 비정상적 버블의 후유증은 더 무서울 수밖에 없다.

고재학 논설위원 goind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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