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 콩 코코넛 페트병, 심지어 화산재까지.'
도무지 연결고리가 없어 보이는 물건들이 대의(大義)를 위해 똘똘 뭉쳤다. "환경을 살리자"는 제법 거창한 기치(旗幟)도 세웠다. 인간들이 망치고 있는 자연을, 어찌 보면 피해자인 녀석들이 구하겠다고 나선 셈이다.
녀석들을 한 자리에 소환한 건 ㈜코오롱FnC부문이다. 알다시피 각종 섬유로 옷을 만드는 회사다. 그런데 녀석들을 도대체 뭐에 쓰려는 것일까. 나름의 철학과 이유가 있었으니 바로 친환경 제품 개발이다. "청소나 봉사도 좋지만 어차피 소비재를 생산하는 기업이라면 상품에 적극적으로, 실제적으로 반영하는 것이 가장 큰 환경활동 아니겠느냐"는 고민에서 비롯됐단다.
하긴 환경기업을 외치는 업체가 어디 한둘인가. 그러나 대개 일회성에 그치거나 억지 반 직원동원령으로 때우는 게 또 현실이다. 반면 코오롱은 "친환경 소재를 사용하면 몸에 자극이 없으니 돈도 벌고, 사회적 의무도 다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일석이조를 노리는 계산법이 나름 신선하다.
녀석들의 활약을 꼼꼼히 들여다보자. 대나무는 주로 아웃도어에 사용된다. 대나무 섬유는 표면적이 크고, 측면이 가늘고 길게 비어있어 수분 흡수 및 발산이 빠르다고 한다. 구김방지 성능이 양호하고 열전도성이 높아 촉감도 좋다. 가볍고 면보다 색이 잘 먹힌다. 덕분에 최근 아웃도어 의류관련 제품의 소재로 각광받고 있다.
코코넛은 열매 껍질을 태워 만든(탄화) 재활용 섬유(코코나 섬유)가 쓰인다. 미세 다공질 구조를 가지고 있어 기존의 숯 섬유와 특징이 비슷하지만 균을 막고 냄새를 줄이는 기능(향균소취)이 뛰어나고, 자외선 차단효과도 우수하다. 수십 번 반복 세탁을 해도 고유기능이 유지되는 터라 기존 친환경 소재보다 낫다는 평을 받는다.
올해는 화산재 미네랄이 함유된 '미네랄레'(MINERALE)가 눈길을 끈다. 화산재를 갈아 만든 원사(原絲)는 미네랄 함유량이 40~50%다. 미네랄은 항취, 자외선 차단, 포도상구균 살균 기능까지 갖춰 인체에 유익하다고 알려져 있다. 코오롱은 녀석들을 옷으로 만들기 위해 다른 공정의 원가를 줄이는 노력도 기울이고 있다.
최근엔 페트병을 재활용한 '에코프렌'(ECOFREN) 제품도 내놓고 있다. 코오롱스포츠와 헤드가 선보이는 의류와 배낭 등이 그렇다. 에코프렌은 기존 합성섬유원료 생산 시 소모되는 원유의 양 등을 줄여 온실가스 발생을 줄일 수 있고, 페트병을 묻거나 태울 때 발생하는 환경오염까지 막을 수 있어 그야말로 일석이조다.
친환경이 접목된 제품은 또 있다. 시티 아웃도어를 지향하는 네이처시티는 'Again 1992!' 캠페인 티셔츠를 통해 환경시계의 의의와 가치를 고객과 공유한다. 여성캐주얼 쿠아는 '소재는 친환경적으로, 디자인은 예술친화적으로'라는 캐치프레이즈의 'Fresh QUA 라인'을 지속적으로 내놓고 있다. 멸종동물 등을 디자인해 입는 것만으로도 환경을 생각하게 한다는 발상이다. 쇼핑백을 가지고 가지 않는 고객에겐 일정 포인트를 적립해줘 나무 심기 등에 사용하도록 돕는다. 꼼꼼하고 세심한 친환경 마인드라고 할 수 있겠다.
자칫 상술로 비칠 수 있지만 '고객과 더불어'라는 마음가짐도 잊지 않는다. 코오롱스포츠는 건전하고 깨끗한 등산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에코 리더십 캠프'(만 13~17세)를 진행하고 있다. '친환경 등산교실' '그린 마운틴 봉사단'(코오롱스포츠 임직원 및 대리점주로 구성) 등도 같은 맥락이다.
코오롱의 환경경영은 지난해 7월 54주년 창립기념일에 확고하게 자리잡았다. "코오롱의 패션 부문은 제품의 기획과 소재의 개발, 생산은 물론 매장 인테리어(VMD)까지 모든 업무 영역에서 환경을 최우선으로 하겠다"는 것. 환경경영 시스템 인증(ISO14001)도 받았다. 생명의 땅 '지구', 생명의 시작 '새싹', 생명의 근원 '물'이 환경경영 기업가치의 상징이다.
궁극적인 목표는 '친환경패션 혁신가'(Eco Fashion Innovator). 코오롱이 앞으로 어떤 친환경 소재를 더 들고나올지 자못 궁금하다.
고찬유 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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