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영화? 왠지 어렵고 무거울 것 같은데?
임순례 감독의 '날아라 펭귄'은 그런 짐작을 확 깨버린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만든 일곱 번째 인권영화인데, 유쾌하고 따뜻하다. "맞다, 맞아. 저건 바로 우리들 이야기야"하고 맞장구를 치면서 폭소를 터뜨리다가 어느 순간 속이 뜨끔해지기도 한다.
이 영화는 거창하거나 뻣뻣하지 않다. 보통사람들의 평범한 일상 속에서 평소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인권 문제를 슬며시 끄집어내 공감을 자아낸다. 아이 교육에 목을 맨 '헬리콥터 맘', 아내와 아이를 외국에 보낸 외로운 기러기 아빠, 고기 안 먹고 술도 못 마셔 회식이 괴로운 직장인, 평생 아내를 종 부리듯 하다가 늘그막에 팽 당할 위기에 처한 가장이 나온다.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한 그들의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며 사교육 광풍, 조기 유학, 직장 내 차별, 황혼 이혼 등 우리 사회의 이슈를 곰곰 생각해보게 만든다.
영화는 초등학교 2학년 승윤이네 이야기로 시작한다. 승윤 엄마(문소리)는 승윤이를 여섯 군데 학원에 보내고 밤 늦도록 선행학습을 시킨다. 영어를 잘 해야 한다며 주말에는 영어로만 말하자고 한다. 아빠는 승윤이가 안쓰럽다. 고달프기는 엄마도 마찬가지다.
다음 이야기는 승윤 엄마의 직장으로 넘어간다. 승윤 엄마의 상사 권과장(손병호)은 4년째 홀아비 신세다. 아이들 조기유학 보내놓고 돈 부치느라 등이 휜다.
직장 화장실에 숨어서 떨어진 단추를 달고 모아둔 쿠폰으로 쉬는 날 자장면을 시켜먹는 그의 모습이 처량하다. 손꼽아 기다리던 아내와 아이들이 방학을 맞아 돌아오지만, 떨어져 산 탓에 서먹해진 가족 관계는 그를 더 외롭게 만든다.
채식주의자에 술도 못 마시는 신입직원 주훈(최규환)에게 회식은 고문이나 다름없다. 같이 어울리지 않고 중뿔나게 군다는 이유로 왕따를 당하고 "게이냐"는 소리까지 듣는다. 주훈의 동기 미선(최희진)은 당차고 씩씩한 여자. 하지만 그런 미선도 담배를 피우는 데는 눈치가 보인다.
권과장의 노부모 이야기인 마지막 에피소드가 가장 재미있다. 은퇴 후 집안에서 바둑으로 소일하는 권과장의 아버지(박인환)는 평생 아내를 무시하고 산 인물.
그런 남편에게 신물이 난 권과장의 어머니(정혜선)가 "나도 이제 내 인생을 살겠다"며 반기를 들자, 큰소리만 뻥뻥 쳤지 아내 없이는 아무 것도 못하는 그는 한심한 처지가 된다.
이 영화는 훈계를 하지 않는다. 선과 악, 가해자와 피해자의 이분법도 없다. 등장인물들이 모두 나와 쌍쌍이 춤을 추는 마지막 장면은 흐뭇하다.
날지도 못하고 뒤뚱뒤뚱 걷는 펭귄 같은 우리 사회 보통 사람들에게 이 영화는 조용한 반성이자 위로이다. 다들 참 고단하게 사는구나 싶은 생각에, 모르는 사이 남에게 상처 준 일은 없나 돌아보게 만든다. 사실 인권에 대한 관심은 입장 바꿔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던가.
오미환 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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