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드루 저커먼 지음·이경희 옮김/샘터 발행·216쪽·12만원
표지 넘길 때, 모서리에 턱 안 긁히게 주의해야 한다. 무겁고 두꺼운 하드커버가 LP판 크기다. '뭐하러 이리 크게…' 하는 생각은 하지만 곧 잦는다. 정방형의 넓은 페이지들을 꽉 채운 것은 거의 실물 크기의 얼굴.
도넛 모양의 인공조명을 맵차게 반사하는 수정체와 손 대면 체온이 느껴질 것 같은 피부 주름의 극사실성이 시선을 압도한다. 옆에 깨알처럼 적힌 글을 읽다보면, 사진 속 인물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한 착각이 든다.
<위즈덤(wisdom)> 은 촉망 받는 신예 사진작가이자 영화감독인 앤드루 저커먼(32)의 사진 인터뷰집이다. 이 당찬 젊은이는 '우리 시대 아이콘과 그들의 지혜'라는 주제로 현 시대 대표적 명사들의 교훈을 책 한 권에 묶기로 마음먹었다. 위즈덤(wisdom)>
2007년 8월부터 9개월 남짓 4명으로 이뤄진 저커민 팀은 17개의 '연장 가방'을 들고 3개 대륙을 누볐다. 비행기에서 보낸 시간만 150시간.
책에 등장하는 면면을 놓고 볼 때, 이 프로젝트는 꽤나 성공적이었다.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등 4명의 전직 국가원수와 나이지리아의 문학가 월레 소잉카 등 노벨상 수상자 6명 등 각 분야에서 최고를 이룬 현대사 주역 51인의 '인생의 이야기'가 담겼다. 이 프로젝트가 가능했던 것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투투 대주교 덕으로, 그는 인터뷰 대상으로 선정된 인물들에게 일일이 편지를 써서 시간을 내줄 것을 당부했다.
투투 대주교는 "우리가 후세에 물려줄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선물은 우리의 경험, 나이든 세대의 지혜"라고 이 프로젝트에 발벗고 나선 이유를 설명한다. 영국의 원로 코미디언 빌리 코놀리는 자신을 찾아 온 저커만에게 이렇게 들려준다. "답은 없어요. 질문이 답이지요. 그리고 지혜는 바로 거기, 내가 있는 자리가 어딘지 끊임없이 물어보는 중에 있습니다. 알고 싶을 마음이 없어질 때, 나는 죽은 겁니다."
유상호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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