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다자회담 참여를 선언, 사실상 6자회담 복귀 가능성을 처음 내비쳤다. 북핵 문제를 둘러싼 상황이 새로운 대화 국면으로 들어설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김 위원장은 18일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 특사 자격으로 방북한 다이빙궈(戴秉國) 국무위원을 만나 "양자 및 다자 대화를 통해 유관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위원장이 '다자 대화'라고 언급했지만, 사실상 6자 회담의 유용성을 인정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간 북한은 6자회담을 북한을 압박하는 5개국과 북한 간의 대결 구도로 규정해 회담장을 박차고 나가 장거리 미사일 발사, 2차 핵실험 등을 강행해왔다.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6자회담에 나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구도에 변화가 생겼다. 일본에서는 자민당에 비해 상대적으로 북일 수교회담에 적극적인 민주당 정부가 탄생했다. 미국에서는 "북한이 비핵화 조치를 취해야 북미회담을 할 수 있다"는 강경 기류가 "북한을 6자회담으로 복귀시키기 위해서라면 북미대화가 가능하다"는 기류로 바뀌었다. 김 위원장으로서는 종전의 6자 구도가 바뀌었다고 판단할 명분을 갖게 된 것이다.
또 북한은 2차 핵 실험 이후 마련된 유엔 안보리 대북 결의 1874호로 인해 국제사회의 고강도 압박을 받아왔다. 미국, 한국, 일본은 물론 중국의 대북 제재가 이어져왔다. 중국의 태도는 북한이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강경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자칭궈(賈慶國)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 부원장은 이날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하지 않으면 중국의 지속적인 경제지원과 안전보장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건강 악화를 경험한 김 위원장이 후계구도를 원만하게 구축하기 위해서는 대외적 안정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6자회담 9 ∙19 공동성명의 유용성을 지적한다. 김연철 한겨레평화연구소장은 "핵을 폐기하면 북한에 중유 100만톤 상당의 에너지와 경제건설 자금을 지원한다는 9∙19 공동성명은 여전히 북한에게 매력적인 카드"라며 " 현실적으로 이런 지원을 해줄 나라는 6자회담 참가국뿐"이라고 말했다.
결국 김 위원장이 6자회담 복귀를 북미대화 전제조건으로 내세운 미국의 요구에 부응하는 모양새로 다자 회담 개최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향후 김 위원장은 스티븐 보즈워스 미 대북정책 특별대표의 방북을 통해 북미대화를 진행한 뒤 북중회담 등 양자대화를 추진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다자회담을 모색하거나, 6자회담 복귀 시점을 저울질할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북한에게 복귀 명분을 주려는 관련국들의 제스처가 나올 수 있다. 김 위원장은 이런 과정에서 주도권 확보를 위해 남북 당국회담을 추진하는 등 남북관계를 적절한 수준에서 관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영섭 기자 youn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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