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훈 지음/중앙북스 발행·256쪽·1만1,000원
고향 거문도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마을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고, 원고 쓰고, 가끔 배를 타고 '생계형 낚시'를 하며 살고 있는 소설가 한창훈(46)씨.
그의 첫 산문집 <한창훈의 향연> 은 다섯 권의 소설집과 세 편의 장편소설로 육화됐던 '한창훈 식 이야기' 보따리의 씨앗과 같은 글들로 묶여있다. 그 씨앗은 무료함이 떡 버티고 있는 일망무제의 바다 풍광과 뭍사람들이 보기에는 '발톱만큼' 하찮아 보이는 섬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이다. 한창훈의>
책은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바다사람들의 이야기가 앞머리에 놓인다. 그의 소설들에서 익히 보아왔건만 이들의 이야기는 여전히 책장을 술술 넘기게 하는 묘한 흡인력이 있다.
물질과 밭일에 시달리다가 곗날이면 해수욕장 모래밭에 둥글게 모여 청승맞은 노래를 부르며 카니발을 벌이는 여인네들, 섬에는 꼭 성공하겠다는 약속 하나만 두고 외항선을 중선배를 유자망배를 타고 떠난 사내들, 섬 출신이라는 배경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졌던 여자동창들을, 작가는 하나하나 호명한다.
배를 타기도 하고 항구로 나와 음악다방 디제이를 하기도 하면서 유랑의 세월을 보내던 작가가 어떻게 문학청년이 됐는지 하는 사연, 그와 교유했던 문단 선∙후배∙동료들과의 에피소드를 묶은 2부 글도 소설처럼 흥미진진하다.
"막소주 마시지 말고 술도 족보 있는 것을 마시라"며 그의 소설적 성취를 격려해주던 고 이문구, 술만 취하면 동성 후배작가들의 입술을 탐하던 송기원, 새벽 세시 반에 전화를 걸어 자신의 소설을 칭찬하던 시인 고 박영근 등에 관한 애틋한 기억들이 감칠맛나는 언어로 되살아난다.
한창훈 소설의 동력인, 인물의 핵심을 잡아내는 눈썰미와 해학이 곁들여진 맛깔스러운 묘사는 산문에서도 여전히 빛을 발한다. 문단에서도 유명한 술꾼인 이흔복 시인에 대해서는 "경기도 여주 사람으로 씹을 것보다는 마실 것을 찾고 그릇보다는 잔을 가까이 해온 탓에 애주 경력이 이렇게 범동북아시아급"라고 묘사하고, 덩치는 산 같지만 마음은 여리디 여린 막역한 문우 유용주 시인에 대해서는 "한겨울 시내 돌돌돌 물 흐르는 얼음이 아름다워 차마 밟지 못하고 진흙탕으로 걸음을 옮"기는 이라고 쓴다.
남북 청년작가 교류행사의 일환으로 금강산을 찾았다가 비쩍 마른 북쪽 젊은이들의 모습을 보고는 생일 축하로 케이크를 '처바르는' 남쪽의 작태를 비판한 '식귀가 온다', 작가회의에서 일하던 시절 교육현장에 작가를 파견해 학생들과 창작수업을 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려 하자 색깔론을 들이대며 작가들을 백안시하던 교육관료들을 꼬집은 '시인의 죽음' 등 세상에 대한 직언을 담은 그의 글들도 무게가 있다.
이창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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