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버거 지음·김현우 옮김/열화당 발행 · 232쪽 · 1만2,000원
연인이 있다. 남자 주인공 사비에르(X)는 테러리스트 조직을 결성했다는 이유로 '이중종신형'(죽은 이후에도 죽을 때 나이만큼의 기간 동안 시신을 감옥 밖으로 내올 수 없다는 형벌)이라는 중형을 선고 받고 수감돼 있다.
약제사인 여자 주인공 아이다(A)는 결혼을 하지 않았기에 그를 면회할 수도 없다. 돌아오지 못할 그를 기다리며 편지를 쓸 뿐이다.
< A가 X에게는>는 19세기 유럽 부르주아 문화의 붕괴과정을 묘파한 < G>로 1972년 부커상을 수상한 존 버거(83∙사진)가 지난해 발표한 소설. 작가가 우연히 사비에르에게 보낸 아이다의 편지 묶음을 손에 넣었다는 가상에서 소설은 출발한다.
아이다의 연서와 그 뒷장에 사비에르가 써놓은 메모가 교차하며 소설이 진행된다. 아이다의 편지에는 약제사로서 가난한 자를 돌봐주고 상처를 치료해주는 일상이, 사비에르의 메모에는 감옥 안에서 전해 듣는 외부 세계의 폭력적 현실에 대한 저항의 메시지를 담은 단상이 씌어 있다.
야간통행금지 시간에 지프를 타고 나가 '그들'로부터 총에 맞은 소년을 약국에 데려와서 치료해 주었다는 아이다의 사연이나, 제1세계의 대형 항공모함이나 여객선의 해체작업을 하는 제3세계 노동자의 일당이 1달러에 불과하다는 사비에르의 메모는, 모두 인간성을 짓밟고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대한 작가의 비판의식을 전달한다.
아이다가 연인 사비에르를 스페인어, 터키어, 아랍어 등 다양한 언어의 애칭으로 부르는 것도, 억압받는 이들의 현실이 특정 지역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보편적임을 전하려는 작가의 의도다.
그러나 소설은 상투적인 저항의 프로파간다로 느껴지지 않는다. 훌륭한 연애소설로서의 품격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덧없는 것은 영원한 것의 반대말이 아니에요. 영원한 것의 반대말은 잊히는 것이죠. 영원한 것은, 독방에 갇힌 당신과, 여기서 이렇게 당신에게 편지를 쓰고 당신에게 피스타치오와 초콜릿을 보내는 나를 필요로 하죠" 같은 사랑의 밀어를 어렵지않게 건져올릴 수 있다.
소설, 미술비평, 시, 사진이론, 다큐멘터리 등 전방위적 글쓰기를 통해 진보적 세계관을 전달하고 있는 존 버거는 최근까지도 가자 지구에서 고통받는 아이들을 위한 미술학교를 여는 등 실천의 중요성을 몸으로 보여주는 지식인이기도 하다.
이왕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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