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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 에세이] 독서의 목적은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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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 에세이] 독서의 목적은 즐거움이다

입력
2009.09.21 0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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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돌 지난 아들 손을 잡고 동네를 걷고 있었다. 길가에 파라솔을 펼쳐놓고 학습지 홍보를 하던 선생님들이 우리 모자를 보자 반갑게 다가왔다. "얘는 아직 말도 잘 못해요." 내 말에 선생님들은 "이제부터가 중요하다"며 "얼마나 아는지 보자"고 자리에 앉혔다.

얼떨결에 아들은 두 돌쟁이로서의 지적 능력을 테스트 받게 되었다. 시험이란 걸 알았는지 아들은 긴장한 얼굴로 교재 앞에 앉았다. 그리고는 평소에는 잘도 재잘대던 과일 이름을 하나도 말하지 못하고 '더 이상 묻지 마세요' 하는 눈빛으로 눈치만 보았다. 귀엽고 딱한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났다. 결국 아들은 '좀 더 시간을 요함'이라는 진단을 받고 생애 첫 사교육을 잠시나마 늦추게 되었다.

'선행학습'이 교육의 키워드가 된 이제 서너 살짜리들에게도 선행학습이 적용되고 있다. 옛날처럼 형제들 어깨 너머로 한글을 깨치기 전에 방문학습지 선생님과 공부의 세계로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요즘 젊은 엄마들의 극성을 곱지 않게 보기도 하지만 그들의 교육열은 꽤 체계적이다. 아기에게 처음에는 초점책을 보여주고 그 다음은 촉감책, 그림책, 생활동화, 과학동화, 영어동화 등등 성장 단계별로 영양분을 공급하듯 다양한 책을 보여준다.

젊은 엄마들은 수시로 변하는 입시와 학부모의 로망인 미국 명문대학 입학을 위해서는 어려서부터 폭 넓은 독서를 통해 사고력과 감수성을 키워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여러 교육 지침서와 아이를 수재로 키운 부모들의 인터뷰를 보면 반드시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래서 엄마들은 자신이 한 달에 책 한 권 안 읽어도 아이들의 책 읽는 습관을 위해 책장을 전집으로 꽉꽉 채운다.

어쨌거나 독서를 권장하니 아름다운 일이다. 그러나 나의 경험에 비추어 약간 우려되기도 한다. 어른들이 권장하는 일은 일단 멀리하는 애들도 있다. 나는 소설가가 된 것이 신기할 정도로 어린 시절 책을 싫어했다. 특히 '책 안 읽으면 머리 나빠진다'는 어른들의 협박을 무척 경계했다. 아마 그래서 내 머리는 상당히 나빠졌을지 모른다.

독서의 재미를 알게 된 것은 성인이 된 후 자발적으로 책을 선택할 수 있게 된 후다. 느긋하게 이것저것 읽다가 내 취향에 눈을 뜨고부터 재미를 붙였던 것 같다. 가장 책을 많이 읽고 사랑한 시기는 대학을 졸업하고 집에 있던 백수 시절이다. 어른들 말이 옳다면 내 아이큐는 그때 늦바람 나듯 갑작스레 좋아졌을지 모른다. 아니어도 상관없다. 어차피 독서의 즐거움은 연애가 그러하듯 책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자체에 있으니까.

홈쇼핑에서 아동용 도서를 광고할 때나 미디어에서 공부 잘하는 학생들의 노하우를 소개할 때 사고력과 논리력 증진 등 독서의 효능을 강조하는 것을 보면 조금 씁쓸하다. 책이란 평생 곁에 둬야 할 친구인데, 그런 친구를 목적을 두고 사귀다 보면 우정이 오래갈까 노파심도 들고 말이다. 여든까지 간다는 무서운 세 살 버릇을 위해 아이에게 글을 일찍 가르치고 책을 읽어 주는 건 좋은 일이다. 다만 독서의 놀라운 효험을 기대하며 아이를 채근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나날이 새로워지는 삶이라면 글 한 줄 안 읽어도 천 권 독서가 부럽지 않다.' 다산 선생의 말씀대로라면 매일 매일이 새로운 아이들에게는 이 세상 자체가 놀라운 책일지 모른다. 그런 아이들에게 세상을 자유롭게 읽고 즐길 여유를 주지 못하니 미안할 뿐이다.

이지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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