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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먼 사태 1년-한국 경제 얼마나 안전한가] <5·끝> 10년 후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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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먼 사태 1년-한국 경제 얼마나 안전한가] <5·끝> 10년 후를 위하여

입력
2009.09.21 0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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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월가 금융인들을 모아놓은 자리에서 강한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다. 요지는 '경제위기를 초래한 과거의 무모하고 방만한 행동으로 되돌아가서는 안 된다'는 것. 어설픈 경기 회복세를 맞아 어느새 과거의 뼈아픈 교훈과 그에 따른 과제를 망각해 가는 세태를 겨냥한 말이었다.

금융위기 1년을 즈음한 오바마의 경고는 우리에게도 유효하다. 벌써부터 곳곳에서 이런 망각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화두처럼 거론됐던 경제체질 개선 논의는 언제부터인가 용두사미가 돼 가는 분위기다. 전문가들은 언제 다시 찾아올 지 모를 외부 충격에 대비해 적어도 10년 후를 내다본 각 분야의 시스템 개선 노력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은다.

■ 금융감독체계

글로벌 금융위기가 위험요소를 사전에 인지하고 적절히 차단하지 못한 금융감독 실패에서 왔음은 주지의 사실. 때문에 각국은 현재 감독시스템 개편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감독시스템 개편은 논의만 무성했지 사실상 '그대로'인 상태다. 국회 기획재정위는 올초 한은에 금융안정 책임을 부여하고 제한적 금융기관 조사권 등 권한을 주는 한은법 개정을 추진했다.

동시에 한나라당은 금융감독과 금융정책, 국내금융과 해외금융 담당이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등으로 분산돼 있어 효율적인 대응이 어렵다는 여론이 높아지자 정부 차원의 감독기구 개편논의를 약속하기도 했다.

반년이 지난 지금, 기구개편 논의는 뚜렷한 이유도 없이 실종된 지 오래고 한은법 개정은 첨예한 기관간 갈등에 휩싸여 성사가 불투명한 상태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달라진 환경과 목적에 걸맞은 권한을 중앙은행에 주는 것이 필요하며 감독기구 역시 미국처럼은 아니더라도 우리 현실에 맞게 각 기관의 책임소재를 명확히 하는 쪽으로 개편할 필요가 있다"며 "위기 때의 심각성을 너무 쉽게 망각하는 듯 하다"고 지적했다.

■ 외채구조와 구조조정

위기 때마다 되풀이되는 '외환 공포'를 막을 금융기관의 외채구조 정비 역시 잊어서는 안될 과제다. 지난해 말 글로벌 신용경색으로 국내 금융기관들의 외화차입과 만기연장이 잇따라 막히면서 국내 금융시장은 극도의 달러난을 겪었다. 이는 단기로 외화를 빌려와 장기로 빌려주는 만기의 불일치 때문. 평상시에는 문제가 없지만 위기가 닥치면 경제 전체에 치명적인 약점으로 부각된다.

올들어 국제 금융시장 환경이 호전되면서 지난해 급격히 치솟았던 금융권의 단기외채 비중은 크게 줄어들었다. 외환보유액 대비 만기 1년 이내 단기외채 비율은 지난해 9월말 79%에서 연말 75%로, 올 3월에는 71.8%까지 낮아졌고 단기외채에 1년 이내에 갚아야 할 장기외채까지 포함한 유동외채 비율도 지난해 말 96%에서 올 3월엔 90%로 하락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국내 은행들은 다시 상대적으로 이자가 싼 단기 외화차입을 늘리고 있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거시경제실장은 "외환위기의 경험으로 만든 외화유동성 비율 규제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 이번 위기로 입증됐다"며 "현재 뚜렷한 규제가 없어 사각지대로 남아있는 단기외채에 대한 관리규정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사들의 건전성 규제 역시 마찬가지. 하준경 교수는 "경기가 좋을 때는 방관하다가 위기가 닥치면 화들짝 놀라 조이는 식은 곤란하다"며 "호경기 때 자본금과 충당금을 더 확충해 불경기 때 줄일 여지를 만드는 '경기 역행적' 건전성 규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기업 구조조정도 상시화되어야 한다. 한상완 현대경제연구원 상무는 "이번 위기로 타격을 많이 받은 건설업계, 다수의 경쟁력 없는 중소기업에 대한 구조조정은 반드시 필요하다"며 "지금까지는 위기 탈출과 금융기관 구조조정에 매진했다면 이제부터는 이들 기업에 대한 지속적인 구조조정을 시작해야 하며 더 이상 늦춰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밖에 우리 경제의 높은 대외의존도를 보완할 내수시장 확대와 나라경제의 덩치에 비해 지나치게 작다고 평가받는 외환시장의 규모 확대, 과도한 가계부채 조정 역시 장기적으로 추진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김용식 기자

■ 손성원 캘리포니아주립대 석좌교수 인터뷰

"더 이상 30년 이상 해온 제조업만 쳐다봐서는 안 됩니다. 앞으로 서비스업 육성을 통해 경제구조를 바꿔가야 합니다."

미국의 간판 이코노미스트로 꼽히는 손성원 캘리포니아주립대 석좌교수(전 LA한미은행장)는 18일 본지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얼마나 빨리 위기를 극복할 것인가'보다 '어떻게 위기를 극복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우리경제가 지금 경제구조 개편을 위한 작업을 하지 않으면 위기는 또 다시 올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미국 경기가 조금씩 살아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진원지였던 월가는 1년전에 비해 분명히 안정을 찾았습니다다. 한 때 파산설이 돌던 웰스파고 씨티은행 등 주요 은행들은 이제 정부 도움 없이도 당장 추가 증자를 할 수 있을 만큼 탄탄해졌고, 그 동안 잔뜩 움추렸던 투자은행들도 파생상품 트레이딩(매매)에 나서며 전반적으로 활기를 찾고 있지요."

-그럼에도 미국경제가 더블딥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가 계속 나오고 있는데요.

"메인 스트리트(실물경제)가 좀처럼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실제 현재 미국에서 주요 대기업을 제외한 대부분의 중소기업들은 1년 전 보다 더 어려워졌어요. 소비자들도 마찬가지여서, 은행에 신용카드를 신청해도 절반 이상이 발급 자체를 거절당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막대한 유동성이 공급됐지만 돈이 실물로 흘러 들어가지 못해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것입니다."

-대미 수출에 상당부분 의존하는 우리 경제로서는 미국의 소비회복이 관건인데요.

"급속한 경기침체는 끝났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미국 국민들이 소비를 늘릴 여건은 아닙니다. 전체 고용의 3분의2를 담당하는 중소기업들이 돈줄이 말라 채용을 꺼리고 있기 때문이지요. 더욱이 미국 소비자들은 소득이 줄었음에도 저축을 늘려 디레버리지(부채축소)에 매달리고 있습니다. 조만간 미국 내에서 출구전략 본격적으로 논의가 될 텐데 이렇게 되면 시중금리가 올라가고, 모기지론 이자가 늘어나 소비는 더 위축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한국경제가 어느 나라보다 빠른 회복세를 보였던 이유는 뭘까요.

"중국의 경기부양책 덕이 컸어요. 대미 수출 감소분을 상당부분 대중 수출로 메운 것이지요. 하지만 중국 경제도 수출에 65% 이상을 의존하고 있어 주요 수출국인 미국의 소비는 늘지 않으면 결국 성장세가 둔화될 겁니다. 한국 경제의 회복도 그만큼 한계가 있겠지요."

-외환위기 이후 우리경제가 펀더멘털이 강화됐지만 지난해 또다시 과거의 위기를 반복했습니다.

"분명 한국경제의 기초체력은 좋았습니다. 하지만 근본 문제였던 '코리아 리스크'를 제대로 줄이지 못했지요. 월가를 비롯한 국제금융시장에서는 코리아 리스크를 통상 정치적 리스크(대북문제)와 경제적 리크스로 나눠 30% 대 70%로 보고 있는데요. 그 중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경제적 리스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대외무역 의존도'인데, 사실 이 부분은 10년 전과 거의 달라진 것이 없었지요. 그러니까 위기가 오자 달러회수 같은 액션을 되풀이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장기적 코리아 리스크는 줄일 수 있는 방법은 뭘까요.

"지금부터라도 서비스산업 확대를 통해 산업구조를 바꿔가는 플랜을 짜야 합니다. 현재 한국 경제는 반도체와 조선, 자동차 등 제조업에서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췄어요. 하지만 이들 산업은 이미 30년 전부터 해 오던 산업으로 이미 시장에서 중국과 인도 등 다른 신흥국가들의 거센 추격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제는 금융과 헬스케어(의료) 교육 유통 등 선진국형 서비스 산업의 발전을 통해 대외 의존도를 줄여야 합니다. 이런 경제구조 개편작업이 없으면 위기는 반복될 수 밖에 없습니다."

손재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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