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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슈퍼 박테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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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슈퍼 박테리아

입력
2009.09.21 0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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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6월 홍콩대학 부속 퀸 메리 병원에 고열과 폐렴 증세가 있는 한 중년 여성이 입원했다. 의료진은 2주 동안 약효가 가장 강력해 '최후의 항생제'라고 불리는 반코마이신을 집중 투여했다. 그러나 병세는 호전되지 않았고 이 여성은 끝내 사망했다. 역학 조사결과 이 여성은 반코마이신에 내성(耐性)을 가진 슈퍼 박테리아(VRSA)에 감염된 것으로 확인됐다. 상처를 통해 감염되는 VRSA는 뼈와 관절까지 침투하고 폐렴을 유발해 치사율이 40%에 이른다. 병원 측은 이 여성의 죽음이 "항생제 남용의 결과"라고 밝혔다.

▦페니실린은 1941년 대량 보급되기 시작한 이후 폐렴, 임질, 디프테리아 등에 약효를 발휘하며 많은 생명을 구했다. 그러나 페니실린 투약에도 살아 남은 세균들은 저항력이 더 강해진 자손들을 증식했다. 페니실린에 대한 내성이 생긴 것이다. 과학자들은 새 항생제 메티실린을 개발하며 저항했지만 곧 무력화하고 말았다. 61년 영국에서 메티실린이 듣지 않는 황색포도상구균(MRSA)이 발견됐다. 이후 반코마이신이 개발됐지만 96년 일본에서 VRSA가 출현함으로써 인류의 공포감은 증폭됐다. 우리나라에서는 99년 VRSA에 의한 사망 사례가 처음 보고됐다.

▦슈퍼 박테리아는 항생제 내성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상징이다. 하지만 우리 국민들은 가벼운 감기에도 복용할 만큼 항생제 오ㆍ남용이 심각하다. 2002년 75.5%까지 치솟았던 우리나라 동네 의원의 항생제 처방률은 지난해 4분기 55.46%로 떨어졌지만 여전히 선진국 수준(10~40%)을 웃돈다. 감기는 바이러스에 의한 증상이므로 항생제가 듣지 않는다. 다만 감기가 폐렴 기관지염 등 합병증을 유발할 수 있어 예방 차원에서 항생제를 투여하는 것이다. 항생제를 감기 특효약으로 여기는 잘못된 인식과 의사들의 무분별한 처방은 항생제 내성을 키우는 주범이다.

▦종합병원 전공의들의 가운과 넥타이에서 슈퍼 박테리아 MRSA가 검출됐다. 국내에서는 아직 세균에 오염된 가운에 의해 환자가 감염된 사례는 보고된 바 없다. 그러나 슈퍼 박테리아의 전염경로는 주로 의료진의 손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에서는 고가의 멸균ㆍ소독 장비를 갖추지 않아도 의료진이 손을 자주 씻으면 병원 내 감염의 40~50%를 줄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온 적도 있다니 손 씻기는 돈 안 들이고 감염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이다. 영국처럼 소매를 통한 감염을 막기 위해 의료진에게 반소매 가운 착용을 의무화하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

황상진 논설위원 apr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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