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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먼 사태 1년-한국 경제 얼마나 안전한가] <4> 위기방역 매뉴얼을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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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먼 사태 1년-한국 경제 얼마나 안전한가] <4> 위기방역 매뉴얼을 만들자

입력
2009.09.18 0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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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임진강 수위가 급작스럽게 불어나던 지난 6일. 무인 자동경보시스템은 아예 작동하지 않았고, 임진강 수위를 상시 감시해야 할 수자원공사는 최고 수위에 달할 때까지도 사고 발생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합동참모본부도 초병의 최초 보고를 10시간 이상 뭉갰다. 위기관리 시스템도 위기대응 매뉴얼도 총체적 부실이었다.

#2. 작년 2월 10일 밤. 560년 역사의 숭례문에 화재가 발생했다. 5분여만에 소방대원들이 출동했지만 눈 앞에서 타 들어가는 '국보 1호' 앞에 속수무책이었다. 화재 진화 매뉴얼은 전혀 없었고, 진화 훈련도 전무한 상태였다. 소방 당국, 문화 재청, 서울시 관계자들이 몰려 들었지만, 정보 공유도 협조도 이뤄지지 못했다. 야간 상주 관리인이 없었다는 것도, 그 흔한 스프링클러조차 없었다는 것도 그제서야 문제가 됐을 뿐이었다.

위기 방역 시스템과 매뉴얼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단지 임진강 참사나 숭례문 화재 등 사회적인 재난에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다. 어쩌면 경제적 재난의 파급력을 감안할 때 그에 대비하는 방역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

경제위기의 방역 시스템에 구멍이 생길 때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우리는 이미 10년여전 환란을 통해서 절실히 경험한 바. 더구나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는 아무리 펀더멘털이 개선되더라도 대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는 위기에 근원적으로 취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임을 다시 한번 일깨워줬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평시 사전 대응 체계 ▲위기 발생 시 조기경보시스템 ▲그리고 위기 발생 후 대응 매뉴얼 등 세가지를 갖춰야 한다고 주문한다.

평상시 언제 어떤 위기가 오더라도 굳건히 대응할 수 있는 체질을 갖춰 놓아야 하며, 위기 발생 징후를 신속히 감지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고, 또 위기 발생 이후에는 매뉴얼에 따라 체계적으로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평시 사전 대응 체계

국가적인 건전성관리가 중요하다. 나라 재정이나 외환보유액, 경상수지 등 기초 체력을 잘 관리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여기에 더해 단기외채 비율과 은행 예대율 관리에 신경을 쏟아야 한다고 주문한다.

윤석헌 한림대 교수는 "위기 상황에서 외국인들이 가장 주목하는 지표 2가지가 단기외채 비율과 은행 예대율"이라며 "아무리 겉으로 드러나는 지표와 실상이 다르다고 해도 위기 시에는 이런 지표들이 가장 부정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만큼 평상시 관리를 잘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조기경보시스템

환란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 위기에도 경보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김광두 서강대 교수는 "외환위기에 대한 반성으로 국제금융센터를 만들었고 이를 통해 조기경보시스템을 운용하고 있다지만 이번 위기에서 거의 작동된 바 없다"고 꼬집는다. 이런 문제점에 대해서는 정부도 일부 인정한다.

기획재정부는 최근 거시경제안정보고서에서 "대외부문 조기경보시스템의 경우 환란 당시 문제가 됐던 수출입 등 경상 계정의 위험요인에 초점을 둔 결과, 자본 계정을 통해 발생할 수 있는 위험에 대한 포착 능력이 미흡했다"고 밝혔다.

◆위기발생 후 대응 매뉴얼

하준경 한양대 교수는 "규제를 하는 것에 대해서는 기업이나 금융기관, 그리소 심지어 당국조차도 상당히 부담스러워하기 때문에 적절한 타이밍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며 "그렇기 때문에 위기 상황 전개에 따라 룰과 매뉴얼에 근거해 규제를 하고 대응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아울러 비상경제대책을 총괄하고 재정정책을 주관하는 기획재정부, 원화ㆍ외화 유동성공급을 담당하는 한국은행, 금융기관을 모니터링하고 규제를 직접 담당하는 금융위원회 등 관련당국간 신속대응이 가능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 금융기관, 기업들 모두 이번 위기 대응 과정을 꼼꼼히 기록으로 남길 필요가 있다. 지난 1년간 겪은 시행착오의 과정들이 그대로 사장돼서는 곤란하다는 지적이다.

강성훈 성신여대 교수는 "정부의 주요 실무라인과 중진 학자, 그리고 현장 종사자들이 모여서 이번 사태의 시작부터 끝까지 면밀히 점검해서 냉철한 평가를 통해 다음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매뉴얼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영태 기자 ytlee@hk.co.kr

■ 금융위기 진원지 美 '금융개혁법안' 칼 뽑아

글로벌 금융위기의 진원지 미국의 사정은 어떠한가.

부실금융기관처리에 천문학적 구제금융을 쏟아 부은 미국 정부는 이러한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해 금융감독ㆍ규제 강화와 새로운 위기대응 방안 마련 등을 골자로 하는 강력한 금융개혁법안을 지난 6월에 발표했다.

의회 계류 중인 '오바마 금융개혁법안'의 가장 중요한 뼈대는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의 시장 감독 권한을 대폭 강화함으로써 금융감독체계를 사실상 일원화한 것. Fed는 앞으로 대형 상업은행뿐 아니라 투자은행, 보험사 등 비은행권 금융기관도 감독하게 된다.

또 위기시 금융기관의 부실이 드러날 경우 재무부가 직접 해당 회사를 인수해 정리할 수 있도록 했으며 사실상 규제의 사각지대에 있었던 헤지펀드와 벤처캐피털도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의무적으로 등록하도록 했다. 신용평가기관과 장외파생상품에 대한 감독, 규제도 강화된다.

이와 함께 재무장관을 의장으로 하는 금융서비스감독위원회(FSSC)와 주택담보대출·신용카드 등 소비자금융 감독을 전담하는 소비자금융보호청을 신설한다.

세계적으로 반향을 불러일으킨 파격적 법안이었으나 당시 의회의 반응은 냉랭했다. 월가의 로비도 집요해, 올해 안에 의회를 통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그러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리먼브라더스 파산 1주년을 맞아 지난 14일 월가의 중심부 페더럴 홀에서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보낸 후 지지부진하던 논의에 탄력이 붙기 시작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불행히도 금융계에는 현 상황을 오판하는 인사들이 일부 있다"면서 "과거의 무모하고 방만한 행동으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 "정부의 금융개혁에 저항하지 말고 협력하라"고 월가에 요구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금융개혁안을 의회에서 사실상 진두지휘하고 있는 프랭크 바니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 위원장도 올 11월에 금융개혁 법안이 의회를 통과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리먼 사태 1주년을 맞은 여론의 질타와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을 계기로 다시금 법안 통과에 긍정적인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셈이다.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 '복기 없는 10년' 경제위기 복귀 초래

전문가들은 10년의 시차를 두고 경제위기를 두 번이나 겪은 주요 이유 중 하나로 '복기(復棋) 없는 10년'을 꼽는다. 예상보다 3년 빨리 구제금융에서 벗어난 데 대한 자축만 있었지, 그 과정에 대한 냉철한 반성은 없었다는 것이다. 나라 전체를 뒤흔든 대사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정부 차원의 백서 하나 남지 않은 현실이 이를 잘 설명한다.

강석훈 성신여대 교수는 "미국 등 선진국의 경우 이 같은 사건이 발생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기록한 다음 현상을 분석하고 전망까지 담은 보고서를 남기고 있다"며 "대단히 늦었지만 세 번째 위기를 맞지 않기 위한 첫 단추는 정부 차원의 기록 작업이다"고 지적했다.

기록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환란 직전인 97년 3월 당시 재정경제원 장관에 취임한 강경식 전 경제부총리가 1999년 <환란일기> 를 냈지만, 개인 회고록차원이었고 더구나 '환란은 경제시스템 운영자의 잘못이 아니다'는 식의 변명이 주 내용이었다.

또 당시 경제사령탑이던 이규성 전 재경부 장관이 2006년 <한국의 외환위기-발생, 극복, 그 이후> 을, 당시 실무를 봤던 정덕구 전 재경부 2차관보가 <외환위기 5년-세계 석학들의 한국경제 진단> (2002년), <외환위기 징비록> (2008)을 냈지만, 정부의 공식 견해가 아니라는 점에서 '백서'로는 한계가 있다.

왜 반성문은 씌어지지 않았을까. 김정식 연세대 교수는 평가를 할 수 있을 만한 기관들의 '정부 눈치보기'를 꼽았다. 그는 "환란 직후 정부의 위기 대처방법을 학계 차원에서 평가하기 위해 자료가 풍부한 정부 연구소에 도움을 요청하고, 건의도 했지만 하나같이 부담스러워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김 교수는 "그 때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정부 연구소는 정부 정책에 대한 평가는 하지 않는 게 관행이었다"며 "KDI에서 보고서가 나오긴 했지만 속 빈 강정이었다. KDI도 나쁜 기억을 끄집어 내는 데에는 상당한 부담이 따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같은 내용으로 두 번의 위기를 겪고 보니, '도대체 원인이 무엇인가' 하는 데 학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며 "구체적인 액션으로는 현재 나타나지 않고 있지만 학계에서도 곧 본격적으로 다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민승 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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