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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칼럼] '폭력 챔피언' 한국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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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칼럼] '폭력 챔피언' 한국의회

입력
2009.09.18 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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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상ㆍ하원 합동연설 도중에 "당신 거짓말하고 있어(You lie)"라고 외쳤던 공화당 조 윌슨 하원의원의 무례한 행동은 세계적인 화제가 됐다. 그는 이 사건 이후 대통령 비서실장을 통해 오바마에게 간접 사과했지만 여론은 가라앉지 않았고, 급기야 하원은 공개 사과를 거부하는 윌슨 의원 비난결의안을 통과시키기에 이르렀다.

주목할 만한 미 하원 행동지침

이 사건으로 건강보험 개혁을 둘러싼 찬반 논란은 더 거세졌다. 그는 고함을 친 것에 대해서는 사과했지만 건보개혁 반대 소신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그의 지역구인 사우스 캐롤라이나의 민주당측 정치인에게 후원금이 몰리자, 건보개혁 반대자들은 맞불을 지르듯 윌슨에게 후원금을 몰아주고 있다. 카터 전 대통령처럼 그의 행동에 인종차별적 요소가 있다고 해석하는 사람들까지 엉켜 윌슨 파문은 쉽게 지워지지 않고 있다.

주목할 것은 미 하원이 비난결의안을 통과시키면서 개정한 행동지침이다. 기존 행동지침에 대통령 관련 항목을 추가한 것인데, 이 지침에 따르면 대통령이 거짓말쟁이라거나 부정직하다거나 위선자라고 말하면 안 된다. 확인되지 않은 의혹을 거론하며 성적으로 불건전하다고 비난하거나 대통령이 적을 도와주고 편하게 해 준다는 말도 하면 안 된다.

반면 정부가 미움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거나 정부 관료에 대해 "덜 떨어진 바보가 업무를 맡고 있다"고 비난하는 것은 무방하다니 재미있다. 정치적 반대와 개인적 비난은 차원이 다르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미국인들이 거짓말과 위선 부정직을 범법이나 위법 불법행위와 비슷하게, 때로는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도 이 지침을 통해 다시 확인할 수 있다. 영국의 경우에도 마거릿 대처 전 총리를 "섹스에 굶주린 보아구렁이"라고 비난하고도 무사했던 의원이 있었으나 거짓말쟁이라고 부르는 건 금기사항이라고 한다.

이런 외국 사례에 견주어 우리를 살펴보면 한심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우리의 경우 언어폭력보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격투기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 폴리시> 는 시의도 적절하게 의회폭력을 다루면서 "한국은 의회 난투극 분야에서 세계 최고"라고 평가했다. 역대 챔피언은 대만이지만 지금 리더는 한국이라는 것이다. 한국 국회에서는'피를 봐야 하는 욕망을 지닌 이들'이'강도 높은 신체접촉이 이뤄지는 스포츠'를 벌이고 있으며, 한국 민주주의는 종합격투기를 통해 이루어진다니 할 말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한나라당 국회 선진화특위가 마련한 '국회 선진화법안'은 다수결원칙 강화를 위해 국회법 국회폭력방지법 등을 고쳐 폭력의원을 제명하거나 형사범으로 처벌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소수당이 회의 진행 자체를 거부해 국회가 파행을 겪는 사태를 사전에 차단하자는 취지라고 보면 된다. 이번 정기국회 내에 처리한다는 게 한나라당의 목표라는데, 필요한 입법이긴 하지만 처리과정은 그리 순탄하지 않을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여야간에 폭 넓은 대화를 하되, 우리도 국회 윤리특위를 중심으로 바람직한 의원 행동지침을 마련하는 게 좋겠다. 국회 윤리특위는 국회의원의 윤리 및 자격을 심사하는 상설 특위이지만, 문제가 생길 때만 수동적으로, 형식적으로 활동하고 있을 뿐 국회 스스로 권위를 유지하고 국민으로부터 신뢰 받는 국회상을 정립한다는 설립목적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행동지침 제정 논의 자체부터 의미가 있는 일이다.

우리 국회도 권위ㆍ신뢰 세워야

국회가 이런 지침을 만들어 시행하고 준수한다면 지방의회에도 좋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제대로 보도되지 않는 데다 유권자들의 감시가 느슨해서 그렇지 지방의회의 언어ㆍ신체 폭력도 국회 못지않을 것이다.

두 말할 것도 없이 국회는 말로 싸우는 곳이다. 의원들이 소속 당의 이념과 정강정책에 충실하게 법안의 적부를 다투고, 행정의 잘못을 따지고, 대통령의 인사권 행사를 검증하면서 국회 운영원칙에 충실하게 활동한다면 의사당 내에서 각종 폭력이 빚어질 이유는 근본적으로 없다.

임철순 주필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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