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법은 비단 한은 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은이 어떤 책임과 권한을 가지느냐에 따라 다른부처, 특히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 이번 한은법 개정을 둘러싼 갈등과 반목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 출발한다.
한은은 향후 금융위기에 제대로 대응하려면 이에 걸맞은 수단이 필요하다는 입장. 금융감독원에 기대지 않고, 혼자서도 금융기관을 조사할 수 있는 권한(단독조사권)이 그 핵심이다.
한은의 논리는 이렇다. 돈을 빌려주면서 상대방 신용을 꼼꼼히 조사하는 것은 대출자의 기본. 더구나 중앙은행의 발권력은 곧 '국민의 돈'인데, 아무리 위기상황이라도 떼일 지 여부도 제대로 조사하지 못한 채 금융기관에 국민의 재산을 빌려줄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지금은 단독조사권이 없어, 대출을 해주면서도 금융기관에 대한 신속한 조사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평소 금융감독을 오로지하고 있는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강력 반대하고 있다. 현행법에 규정된 한은과 금감원의 공동검사로도 충분하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실제론 "한번 한은에 독자 조사의 길을 터 줄 경우, 결국 감독당국의 독점적인 조사권한은 무력화될 것"을 우려하는 정서가 강하다.
정부내 법안 제출권을 가진 기획재정부도 같은 정부부처인 금융위의 입장에 가깝다. "법 개정은 필요하지만 서두를 일이 아니다" "기관간 협력 강화로 한은의 독자조사 필요성은 줄어들었다"며 법 개정에 줄곧 소극적인 것도 이 때문이다.
한은법 갈등이 더욱 복잡해지는 이유는 정치권에서도 의견이 갈리기 때문. 특히 이번 사안은 여ㆍ야간 대립이 아닌, 국회내 상임위원회간 대립이라는 특이한 형태를 띠고 있다.
한은의 소관 상임위인 기획재정위는 여ㆍ야 의원 할 것 없이 대체로 한은법 개정에 적극적인 반면, 금융위를 맡고 있는 정무위는 역시 소속 의원들이 한 목소리로 법 개정에 반대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결국 기재위가 정무위가 각각 소속기관을 대변하는 모양새인데, 시간이 갈수록 대립은 두 상임위 간의 자존심 싸움으로까지 번져가고 있다.
김용식 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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