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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포츠/ 허정헌기자의 '해 봤더니'- 카트레이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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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포츠/ 허정헌기자의 '해 봤더니'- 카트레이싱

입력
2009.09.18 0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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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속 페달을 밟았다. 부드럽게 노면을 차고 나갈 것이라는 기대는 여지 없이 무너졌다. 엔진과 연결된 뒷바퀴에서 '끼이익' 금속성의 비명을 내며 차체가 튀어나갔다. 헬멧을 쓴 고개가 뒤로 휙 젖혀지는 충격. 배기량 100cc, 14마력 엔진이 뿜어내는 괴력은 기자를 당황케 하기 충분했다.

100마력 이상의 승용차에 익숙한 사람들이 듣기에 14마력이란 수치는 우스울 뿐이겠지만 말 그대로 14마리의 말이 끄는 힘은 가공할 만했다. '이걸 내가 제대로 조종할 수 있을까.'

기자는 8월 초 태백레이싱파크에서 2008 GT 마스터즈 챔피언 유경욱(29) 선수의 차량에 동승한 경험을 잊을 수 없었다. 코너를 돌아 나갈 때의 아찔한 쾌감, 엔진의 굉음, 지면과의 마찰로 타이어가 타면서 매캐하게 코 끗을 자극하는 냄새 등 보고 듣고 맡으며 몸으로 느꼈던 감동이 그리워 몸부림쳤다. 누우면 천장에 레이싱 카 안에서 봤던 경관이 그려졌고, 실제로 경주에 참가하는 꿈을 꾸기도 했다.

카 레이싱은 그렇게 동경의 정점에 우뚝 서 있었다. 운전석에 앉아 직접 차를 몰아 보지 못한 것을 아쉬워 했던 기자는 카 레이싱의 축소판, 카트 레이싱에 도전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러고 보니 세계적 카 레이서 미하엘 슈마허(40ㆍ독일)도 카트 선수였지 않은가.

14일 기자는 경기 파주시 탄현면 성동리 통일전망대 주차장의 카트랜드(kartland.co.kr)를 방문했다. 이곳 문성수 사장이 1990년대 초 한국에 카트를 들여온 주인공이라는 소문을 들은 터였다. 포부도 당당하게 "카트 레이싱을 하고 싶다"는 기자에게 문 사장은 "2시간30분 정도 교육을 받으면 가능하니 일단 한 번 타 보라"며 빙긋 웃었다.

1시간30분 간 이어진 이론 교육은 사실 따분했다. 빨리 서키트(경주장)를 달리고 싶은 기자의 귀에 카트의 명칭 제원 역사 등이 들어올 리 만무했다.

일반적인 카트에 대해 간단히 요약하자면 앉았을 때 오른발이 닿는 곳에 가속 페달, 왼발 쪽에 브레이크 페달이 있다. 자동변속기 차량은 오른발로 가속 페달과 브레이크 페달을 번갈아 밟지만 카트는 각각 나눠서 밟는다는 게 다르다. 또 브레이크가 케이블식이라는 점도 일반 차량과 다르다.

승용차의 유압식 브레이크는 밟는 만큼 제동력을 발휘하지만 케이블식 브레이크는 자전거 브레이크와 유사하다. 브레이크 디스크를 헤드가 잡아 줄 때까지 유격이 상당히 커서 이를 확인하지 않으면 정확한 제동력을 구사할 수 없다.

이론 교육을 마쳤지만 바로 레이스용 카트에 앉을 수는 없었다. 감각을 익히기 위해 레저용 카트 운전을 먼저 해야 한다는 문 사장의 조언. 레저용 카트 운전 실력을 보면서 레이스용 카트에 오를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제초기 시동을 걸 듯 의자 뒤 엔진에 연결된 줄을 당기자 '왱'하는 시동음이 들렸다. 가속은 굉장히 더뎠다. 가속 페달을 꾹 밟아야 한 박자 뒤 속도가 천천히 오르는 정도. 레저용인만큼 급가속 시 발생할 수 있는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장치라는 게 주행 교육을 맡은 카트 10년차 이병철 팀장의 설명이다.

첫 번째 코너까지 100m 정도 꾸준히 가속하자 '별거 아니군'이라는 자만심은 멀찌감치 도망갔다. 체감 속도는 100km를 훌쩍 뛰어넘고 있었다. 시야가 좁아지고, 코너를 돌아 나갈 때는 원심력을 온 몸으로 이겨내기 위해 머리가 저절로 코너 안쪽으로 한껏 기울어졌다.

처음 만나는 180도 헤어핀 커브(여성의 머리핀을 닮았다고 해 붙인 이름), 100도의 제2코너, 곧바로 이어지는 90도의 제3, 제4코너를 돌아 280m 구간을 돌았을 뿐인데 제정신이 아니었다.

네 바퀴째 직선 주로에 접어들었을 무렵에야 정신을 차리고 계기판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고작 시속 52km라니. 나중에 안 것이지만 차체가 지면에서 4cm 밖에 떨어지지 않고, 바람을 온 몸으로 맞는 데다 충격흡수장치가 없어 모든 진동이 그대로 전해지는 탓에 체감 속도는 실제 속도의 2배 이상이란다. 카트 무게도 고작 80kg에 불과해 가속력은 더욱 대단했다.

레저용 카트에 혼쭐이 난 기자. 그러나 여기서 물러설 수는 없었다. 레저용 카트가 9마력, 최고시속 70km인데 비해 레이스용 카트는 14마력, 최고시속 100km로 50% 가량 주행 성능이 좋다는 점이 더욱 부담스러웠다.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 팀장은 "밟는 대로 나가니 가속 페달을 조심해서 다뤄야 한다"는 말을 두세 번이나 반복했다.

레이스용 카트는 역시 달랐다. 조심스러운 마음에 시속 90km 이상 속도를 내지는 않았지만 태백레이싱파크의 기분이 느껴졌다. 두 바퀴째. "선수들은 코너 진입 직전 브레이크를 차듯이 한 번 강하게 밟아 감속한 뒤 핸들을 돌리고, 바로 가속을 한다"는 이 팀장의 말을 실행에 옮겼다. 유경욱 선수의 오마주를 꿈꾸며 코너에 진입 전 브레이크를 강하게 밟았다.

뒷바퀴에서 흰 연기가 피어 올랐다. 그리고 핸들을 오른쪽으?꺾는 순간, 차체가 코너 밖으로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이대로 가면 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가속 페달을 강하게 밟자 차체는 튕기듯 코너를 벗어났다. 안도의 한숨, 그러나 온 몸에 힘이 풀렸다.

카트에서 내려 잔디밭에 널부러저 있는데 이 팀장과 경력 3년차 박길훈 팀장이 레이스를 펼쳤다. 4개의 코너를 자로 잰 듯 공략해 나갔다. 트랙 바깥 쪽에서 코너에 진입해 원의 중심에 가장 가깝게 코너를 돌고 다시 바깥쪽으로 나가는 레이스의 기본 '아웃 인 아웃(out in out)'을 제대로 보여 줬다. 1바퀴를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18초대 초반. 30초에 육박하는 초보자가 보기에는 다른 세상 사람들의 경주였다.

파주= 허정헌 기자 xsco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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