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에서 만든 제품을 한국에 팔아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한국에서 첨단 제품을 만들어 전세계로 수출하는 게 목표입니다."
신뢰를 주는 차분한 말투에 논리가 정연했다. 운동선수였다는 사실을 잊어버릴 정도였다. 92바르셀로나 올림픽 사격 금메달의 주인공이었던 이은철(42) 실리콘밸리테크 사장.
그는 맨주먹으로 회사를 설립한 지 4년 만에 매출 40억원대로 성장시켰다. 최근 자사 제품을 수출하면서 첨단 통신 장비 생산업체 (주)인텔라까지 세웠다.
총알 없애는 기계 이은철
초등학교 4학년 때 사격을 시작하면서 이은철은 올림픽 금메달을 인생 목표로 삼았다. '총알 없애는 기계'란 별명이 붙을 정도로 사격에 매달렸고, 고등학생이던 1984년부터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2000년까지 무려 17년간 국가대표로 활약했다.
"세계 정상에 오른 비결이요? 옆에 쌓인 탄피가 산을 이룰 때까지 노력하면 됩니다. 기본기가 쌓이지 않으면 체력도 정신력도 소용이 없어요. 88서울올림픽에서 예선 탈락했지만 주위에서 노력만은 이은철이 금메달이라는 소리를 들었죠. 일단 기본을 갖추면 목표와 방법을 궁리하고 노력하면 됩니다."
이은철은 92바르셀로나올림픽 소구경 소총 3자세에서 대역전극을 펼쳤다. 예선 8위로 결선에 턱걸이했지만 대역전극을 펼치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사격감이 떨어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8㎏짜리 총을 단 한 번도 내려놓지 않았다.
총 무게에 눌린 왼 팔에 피가 통하지 않자 처음엔 찌릿찌릿 저리더니 이윽고 감각이 사라졌다. 그러나 곧이어 통증이 심해졌고 팔이 떨리기 시작했다.
"마지막에 손이 떨렸지만 금메달을 확신했고 10.6점을 쐈습니다. 예선에서 꼴등이었는데 결선에서 1등이 됐죠. 경기가 끝나자 왼팔이 너무 아파 사격복을 벗었더니 실핏줄이 터져 멍이 수십 개나 생겼던 걸요."
이은철은 올림픽 금메달 1개, 세계선수권 금메달 2개, 아시아선수권 금메달 4개, 아시안게임 금메달 5개를 수확했다.
컴퓨터 천재였던 사격 천재
이은철은 84LA올림픽부터 2000시드니올림픽까지 올림픽만 다섯 번 출전했다. 올림픽 금메달을 손에 쥔 이은철은 94년부터 올림픽 메달리스트를 육성하는 지도자를 꿈꿨다. 그러나 연습하지 않아도 항상 1등을 도맡았던 실력 때문에 소속팀 KT와 대표팀은 이은철의 은퇴를 만류했다.
"사람을 칼로 비교하자면 칼날을 세워야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딸 수 있어요. 전 인생의 목표를 달성한 뒤 집중력이 떨어졌어요. 목표가 사라진 셈이죠. 국가대표가 올림픽에 나가서 메달을 따지 못하면 굉장히 비참해요. 게다가 지도자가 목표인데 선수로 뛰는 것도 싫었고, 후배 자리를 뺏고 있다는 자괴감도 컸지요."
2000시드니올림픽 끝나자 이은철은 실리콘밸리로 떠났다. 루스런 공대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했던 이은철은 윈드리버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했다.
중학교 때부터 컴퓨터 천재로 통했던 이은철은 MIT 공대로부터 입학 제의, 마이크로소프트로부터 입사 제의를 받을 정도로 컴퓨터에 능통했다.
보기 드물게 공부한 운동선수였던 이은철은 실리콘밸리 엔지니어를 거쳐 2005년부터 정보통신(IT) 사업가로 변신했다.
사업으로 번 돈 사회에 환원
"최종 목표는 사격 지도자가 되는 겁니다. 금메달을 따는 선수보단 사격 꿈나무를 키우고 싶어요. 사업은 최종 목표로 가기 위한 수단입니다."
잘 나가는 IT업체 최고경영자의 꿈은 소년소녀 가장을 돕는 장학회와 스포츠 재단 설립. "2000년에 인연을 맺은 강초현이 올림픽 은메달로 가난에 찌든 집안을 살리는 걸 봤습니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이들이 자립하고 교육받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고 싶어요. 회사가 어느 정도 이상 커지면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고, 전 스포츠재단을 만들어서 봉사하며 살 겁니다."
운동에서도 사업에서도 성공한 비결은 뭘까? "어제나 내일을 생각하지 말고 오늘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라고 강조한 이은철 사장은 "제가 갈 곳을 알기에 전 그곳을 향해 열심히 달릴 뿐입니다"라며 눈빛을 반짝였다.
성남=이상준 기자
사진,성남=신상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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