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영화 관계자는 얼마 전 한 상가에 문상을 갔다가 배우 김명민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시체가 걸어 들어오는 것만 같았다"고 그는 말했다. 16일 오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명민은 '시체'라는 표현이 무안할 정도로 건강을 많이 회복했지만, 그의 몸은 여전히 작은 충격에도 바스러질 듯 가냘프고 위태로워 보였다.
치열하게 욕망을 추구하던 외과의사 장준혁('하얀거탑'), '똥덩어리'라는 독설을 서슴지 않는 완벽주의 괴짜 지휘자 강마에('베토벤 바이러스') 역을 거치며 연기의 성을 쌓아가고 있는 김명민. 그가 이번엔 조금씩 신체가 말라 죽음에 이르는 루게릭병 환자 백종우 역을 맡았다.
캐스팅되는 순간부터 과연 그가 몸을 얼마나 혹사시킬 것인가 하는 세인의 가학적 관심이 집중됐던 영화 '내 사랑 내 곁에'에서 그는 20㎏이나 살을 뺀 52㎏의 나무토막 몸매로 쉼없는 연기 열정을 증명한다.
김명민은 살인적인 감량으로 소화해내야 했던 종우 역이 "그저 운명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캐스팅 제의 자체를 뒤집고 싶었고, 아예 시나리오를 읽지 말았어야 했다고 자책할 정도로 정말 자신이 없는 작품이었지만 발버둥쳐도 도망칠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는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내가 이길 수 있을까' '내 역량 밖의 일이다'라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고 덧붙였다.
살을 빼면서 그는 몇 번이고 사신의 그림자를 접해야만 했다. "'여기서 더 살을 빼면 죽겠구나'라는 생각을 열 번 가량 하면서도 물러서지 않았다"고 했다. 지독한 고통 속에서 그는 쾌감을 느끼기도 했다. "몸무게가 줄어들면 성취욕이 생겼다. 아침 촬영장에서 만난 스태프들이 '어머 너무 빠졌다' 그러면 '아 성공했구나' 하는 기쁨을 느꼈다. 그럴 땐 너무 즐거웠다. 하지만 몸무게가 제자리이기라도 하면 지옥이 따로 없었다. 그러면 그냥 굶었다. 뭐 다른 방도가 있었겠나."
그는 영화의 완성도와는 무관하게 "나 자신과의 싸움에 이긴 것에 만족한다"고 했다. 그래서 "또 다음 목표인 차기작으로 나갈 힘이 생겼다"고도 했다.
보는 사람의 모든 기력이 빠져나갈 정도로 처절한 역할을 맡는다고 나섰을 때 주변에선 완강하게 말렸다고 한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사람 잡는 역할을 하냐' '사람 나고 배우 난다'는 등의 말이 듣기 싫어 사람들도 만나지 않았다"고 그는 말했다.
"참 독한 성격이란 말들이 많다"고 하자 그는 "항상 이게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에 연기를 하다 보니 생기는 오해"라고 했다. "김명민이라는 인간으로 38년을 살아왔는데 4~5개월 동안 철저히 연기를 하지 않고서는 루게릭병 환자가 될 수 없지 않느냐"고 그는 반문했다.
"아무리 몰입해도 배역의 발끝 정도나 흉내 내는 것이다. 어떤 인물에 동화되기는 항상 힘들다. 내 평소의 습관, 말투, 버릇이 나도 모르게 나오기 마련이다. 자연히 촬영기간 가족과 친구를 멀리하고 사소한 농담조차 하지 않게 된다."
그는 그런 자신의 자세를 "배우의 임무"라고 말했다. "유치원 시절 학예회 무대에 선 이후 그런 배우가 되고 싶었다. 나의 목표이자 꿈이고 배우가 된 이유이기도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그는 "'김명민이 얼마나 살을 뺐냐'에만 관심을 주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희귀 난치병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깨주고 싶다"는 바람도 내비쳤다. "희귀 난치병을 앓는 분들의 소외된 삶을 꼭 알리고 싶었다. 관객 분들은 항상 곁에 있는 사람의 소중함을 느꼈으면 좋겠다. 영화를 보는 동안에도 손을 꼭 잡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라제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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