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도 난 허구헌 날 싸움질이나 하고, 가는 술집마다 출입금지 당하고 살진 않아! 적어도 난 한밤중에 자다가 악몽 땜에 비명을 지르고, 그래서 아이들이 무서워 울고, 온 집안 다 뒤집어 놓는 그런 짓은 안 해!"
"프롤레타리아는 생산공장의 주인이 되어 착취 현장은 해방 사회의 모태로 바뀔 것이다. 우리를 얽어맨 쇠사슬 말고 우리가 잃을 게 뭐란 말인가? 이 땅의 프롤레타리아 만세! 굶주린 군대여 일어나라!"
두 편의 번역극이 초연된다. 남성적 근육질의 언어 대 지식인의 정교한 언어가 각축이라도 벌이는 것으로 보아도 좋을 만큼 둘의 세계는 선명히 나뉜다. 극단 컬티즌의 '뱃사람', 서울시극단의 '다윈의 거북이'는 각각 2006년과 2008년 영국과 스페인에서 선보인 무대로, 이번에 나란히 국내에서 막이 오른다.
'뱃사람'은 술에 의한, 술을 위한 연극이다. 등장인물들은 한결같이 술에 취했거나, 술 아니면 못 사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성탄절을 전후해 벌어진 포커 테이블에서 주고 받는 언어의 난전이 이 연극의 전부다.
인생 막장에 처박혀 술에 모든 것을 건 뱃사람들의 넋두리는 저주보다, 쌍말보다 강렬하다. 그러나 극이 진행돼 감에 따라 그들이 갈구하는 것은 다름아닌 진정한 구원이라는 사실로 자연스레 귀결되면서, 객석을 깊은 공감의 현장으로 바꾼다.
이호재와 정동환 등 노련한 두 배우가 일궈내는 앙상블에 곁들여지는 이남희, 이대연 등의 선 굵은 연기는 왜 이 연극이 현재 세계 100여 곳에서 상연되고 있는지를 확인케 한다. 소재가 소재니만큼, 성탄절이 되면 더욱 바빠지리라는 관측이다. 연출 이성열. 10월 8~18일, 아르코극장 대극장. 화~금 오후 8시, 토 오후 4시, 일 오후 3시. (02)765-5476
저 뜨거운 사실주의에 비한다면 '다윈의 거북이'는 즐거운 사유의 가능성을 제공하는 연극이다. 원로 역사학자의 집에 찾아온 할머니는 다윈의 갈라파고스 섬에서 데려온 거북이였다.
그 거북 노파의 입에서 제1차 세계대전부터 베를린장벽 붕괴까지의 사실에 파묻혔던 역사가 지혜와 유머에 얹혀 펼쳐져 나온다. 해박한 거북이 현대사에 대해 가하는 풍자는 블랙 코미디라 해도 좋을 수준이다.
다윈의 집을 나온 거북은 영국, 프랑스, 독일, 폴란드 등지에서 근현대사의 현장을 목격, 그 와중에 점차 인간으로 진화하게 된다. 거북의 통찰은 현대사에서 드러난 인간의 어리석음이, 인간은 진화하고 있는가 하는 회의가, 끝을 모른 채 나아가고 있는 과학과 문명이 처할 결과가, 결국 인간들이 감내해야 해야 할 몫이라고 일러준다.
연출자 김동현씨는 "영상 등 매체의 힘을 빌어 현대사를 '팩션'의 공간으로 재구성한 희극"이라며 "동시대에 대한 반성과 풍자의 가능성을 연극적으로 모색하고 싶다"고 밝혔다. 2006년 사망한 최장수 거북이 극의 현실적 소재였다.
'다윈의 거북이'는 아시아 첫 상연이기도 하다. 강애심, 강신구 등 출연. 10월 9일~11월 1일, 세종M씨어터. 화~금 오후 8시, 토 오후 3시~7시, 일 오후 3시. (02)399-1114
장병욱 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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