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 바다의 양쪽에서 민주당이 승리했다."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16일 일본 총리에 취임하는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민주당 대표에게 지난 3일 전화를 걸어 건넨 총선압승 축하인사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 덕담을 통해 9개월여의 시차를 두고 각기 정권교체에 성공한 미국과 일본 민주당의 이름이 같은 데서 오는 유대감을 표현하려 한 것 같다. 앞서 치러진 한국 대선에서 한나라당 대신 민주당이 이겼다면 그는"바다 양쪽의 세 나라에서 민주당이 승리했다"고 말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같은 이름이 주는 친밀감이 그리 위력적이지 않음은 이후의 상황 전개에서 금방 드러난다. 일본 민주당이 아직 정권교체의 흥분에 젖어 있을 때 미측은 주일미군 기지이전이나 미일지위협정 문제 등에서 자민당 정권 때의 합의를 지키라며 선수를 치고 나왔다. 인도양에서 자위대의 급유지원 활동도 계속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는 일본 민주당이 공약한'대등한 대미 외교'의 핵심 정책을 초장에 무력화하려는 선제 공세에 해당한다. 이런 움직임이 갖는 함의로 보면 오바마 미 행정부는 일본 민주당의 집권을 내심 달가워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울 정도다. 미국 입장에서는 일본의 정치적 발전에 찬사를 보내는 것만으로 미 국익이 충족되는 것은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국가간의 관계, 특히 국가 안위와 직결된 안보 문제를 진보나 보수의 이념적 잣대로 재단하기는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일 민주당은 극좌, 극우까지 혼재된 복잡한 내부 사정을 가진 보수 또는 중도우파 정당으로 분류되지만 자민당에 비하면 그래도 왼쪽으로 상당히 이동해 있다. 미국의 경우, 미 민주당의 오바마 행정부는 건강보험 개혁을 밀어 붙이고 있는 와중에 '사회주의자'라는 비난에 직면할 정도로 진보 색채가 뚜렷하다.
이렇듯 두 정당이 국내 문제에 있어선 보다 많은 이념적 공통성을 가질 수도 있겠으나 주일미군 문제 등에서의'진보적'접점은 쉽게 찾아지지 않을 것이다. 이름에 걸맞게 이념적 성향이 비슷한 정당이라 해도 국익을 놓고는 충돌할 수 있다는 얘기다.
미일이 처한 현실은 노무현 전 대통령 정부와 조지 W 부시 전 미 행정부 사이의 부조화를 겪어본 우리에게는 그리 낯설지 않다. 당시엔 노 전 정부에 진보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었고 부시 정부는 보수강경 일변도로 치부됐기 때문에 상황은 더 심각했다. 흑백논리로 규정된 이념적 배타성은 국내 정치적 의도ㆍ목적과 맞물리면서 한층 공고해지기 일쑤였고 결국 국론의 심각한 분열로 이어지곤 했다. 이념의 차이를 과장하고 이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이념 과잉, 이념 왜곡이 작용한 결과다.
바야흐로 북미가 6자회담에 앞서 양자협상을 시작하려는 시점이다. 한미 정부간 이념적 성향의 조합이 지난 정부 때와는 정반대인 지금의 상황에서 이념적 혼란이 증폭될 수 있는 때이기도 하다. 그 동안 북미 대화에 소극적인 오바마 행정부에 실망감을 표시해온 국내의 이른바 진보론자들은 미국이 이제서야 바른 길로 들어섰다고 평가할 것이다.
반면 보수세력들은 행여 한국을 배제할까 싶어 북미 접근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과의 대화 여부에 따라 오바마 정부의 이념적 성향이 바뀌는 것은 아닐 터이다. 대화=진보, 압박=보수라는 시각도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다. 정책에 이념을 덧씌울 것이 아니라 실체에 천착해야 한다.
고태성 국제부장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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