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금융정책국장을 지낸 변양호씨는 외국 언론이 '세계 경제를 이끌 차세대 리더 15인'중 한 명으로 뽑을 만큼 엘리트 관료였다. 2006년 6월, 자택에서 체포된 변씨는 검찰 조사 하루 만에 현대차 계열사들에 대한 채무 탕감 청탁과 함께 2억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 수감됐다.
변씨는 보석 석방될 때까지 5개월, 항소심 재판부가 1심 판결을 뒤엎고 유죄를 선고하면서 법정 구속한 뒤 5개월 등 10개월을 감방에서 보냈다. 그 사이 외환은행 헐값 매각 의혹 사건으로 다시 검찰 조사를 받고 두 차례 영장이 청구됐다 모두 기각돼 불구속 기소됐다.
공권력 잘못 쓴 변양호씨 사례
변씨는 지난 11일 2억원 수수 혐의에 대해 대법원으로부터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첫 구속 이후 무려 3년 3개월 만이다. 변씨는 검찰과의 혈투로 만신창이가 된 자신과 가족이 겪었던 고초를 떠올리며 피를 토하고 싶은 심경일 것이다. 자신을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가족을 고통의 늪에 빠뜨린 검찰에 응분의 책임을 묻고 싶을 것이다. 그렇게 한다 해서 가슴 속 응어리가 풀릴까 의문도 들고, 가만 있자니 공권력 앞에서 한없이 나약한 자신에 화가 나기도 할 것이다.
변씨의 고초를 장황하게 늘어놓은 것은 변씨를 두둔하거나 동정하려는 게 아니다. 검찰이 칼을 잘못 휘둘러 국민에게 피해를 입혔을 때 검찰이 어떤 태도를 취하는 게 옳은 것인지 생각해 보려는 것이다.
검찰은 국가 공권력을 상징하는 최고 사정기관이다. 그러나 변씨 사례에서 보듯 잘못 사용된 공권력은 개인에게 회복 불가능한 치명상을 입힌다. 검찰은 늘 수사의 정당성을 강조하지만 1ㆍ2ㆍ3심 재판을 거쳐 피고인의 무죄가 확정되면 정당성은 퇴색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검찰은 자신들 때문에 고통 받은 이들에게 사과를 하거나, 그들 가슴에 깊게 패인 상처를 치유해 주려 노력한 적이 없다.
그것은 공권력의 권위와 법 집행의 정당성을 검찰 스스로 훼손하고 향후 공권력 행사에 어려움을 초래할 수 있는 행위는 하지 않으려는 편협하고도 이기적인 사고의 산물이다. 무죄 판결이 나면 국가 상대 소송을 통해 상응한 배상을 받으면 그만이라는 편의주의적 태도가 중첩된 결과이기도 하다.
법을 다루는 검찰이라 해서 언제나 정당하고 옳은 것은 아니다. 검찰은 결코 무오류ㆍ무결점 기관이 아니며, 잘못은 누구나 저지를 수 있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잘못을 인정하고 반복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검찰은 잘못을 시인하고 사과하는 데 너무 인색하다. 과거 독재 시절의 잘못된 수사에 대한 사과만 해도 그렇다. 검찰은 지난해 10월 임채진 당시 검찰총장이 '안타까움과 아쉬움'을 나타내는 데 그쳐 잘못된 과거 판결에 대해 직설적으로 사과한 사법부와 대조를 이뤘다.
검찰은 반문할 것이다. 기소한 범죄 혐의자가 무죄 판결을 받았다 해서 일일이 사과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며, 부정부패ㆍ비리 수사에 지장만 초래할 텐데 왜 하느냐고. 하지만 잘못에 대한 사과는 국민과의 거리를 좁히는 첫 걸음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검찰의 신뢰 회복과도 직결되는 문제다. 검찰은 기회 있을 때마다 수사 방식 개선을 통한 국민 신뢰 회복을 공언하지만, 변씨처럼 공권력에 의해 피해를 입은 이들의 가슴에 박힌 대못을 뽑아 주지 않는 한 반향 없는 울림에 그칠 뿐이다.
잘못 사과해야 국민신뢰 얻어
의지가 있다면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무죄 확정 판결을 받은 이들에게 검찰총장 명의의 위로ㆍ사과편지를 보내거나, 정치ㆍ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사건의 경우 사과 성명을 발표할 수도 있다. 그런 작업이 반복되면 정정당당한 수사를 위한 검찰의 진정성은 빛을 발할 것이다. 별건 수사, 표적 수사에 의한 폐해도 줄어들 수 있다.
경위야 어찌됐든 결과적으로 잘못된 수사에 대해 검찰총장이 위로ㆍ사과 편지를 쓰고 성명을 발표하는 상황에서 허황된 공명심을 좇을 검사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제일 바람직한 것은 검찰이 사과할 일이 생기지 않게 하는 것이다.
황상진 논설위원 apr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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