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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 칼럼] '정운찬 실험' 어깨 힘 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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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 칼럼] '정운찬 실험' 어깨 힘 빼야

입력
2009.09.15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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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쯤 정운찬 총리 후보자는 "국내외 상황이 책상머리에 앉아 고뇌를 거듭할 만큼 한가하지 않다"던 자신의 생각이 너무 한가했다고 후회할지 모른다. 또 지식인의 책임 중 하나라고 여겼던 현실 참여가 '장난'이 아니구나라고 자책할 법도 하다. 이념 성향과 정책 노선에 머물던 논란이 병역, 논문, 위장전입, 공무원법 위반 등 전방위로 확대되는 수모를 겪으니 말이다.

야당의 저격수 운운은 자가당착

야당은 내주 초 열릴 국회 인준청문회에'저격수'까지 배치하며 정 후보자를 낙마시키겠다고 벼르고, 진보ㆍ개혁진영에선 총리직 수용을 '적과의 동침'이라고 몰아세우며 독설을 퍼붓는다. 4대강 사업과 세종시 건설 등 정권의 아킬레스 건에 대해 '김 빼는'소리를 한 것에는 분을 참지 못하는 표정이다. 정권에 합류하더라도 '트로이 목마'처럼 가야 하는데 숫제 나팔수가 되겠다고 작정한 것 아닌가라는 의구심과 당혹감을 느낄 만도 하다.

중도실용주의와 따뜻한 시장경제 등 정권 2기의 철학에 공감하고 지식인으로서 '더 큰 대한민국'의 건설에 동참하겠다는 개인적 선택은 좋지만, 왜 남은 사람들의 전선에 찬물을 끼얹고 열패감마저 안겨주고 가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연애 파트너와 결혼 상대가 달랐다는 식의 비난은 방향이 틀렸다. 그것은 마치 짝사랑하다가, 혹은 스토커처럼 달라붙다가 상대가 변심했다고 야단 떠는 것처럼 허망하고 엉뚱하다. 경륜과 자질을 입이 마르게 칭찬하며 데릴사위로라도 모셔오려던 신랑감이 다른 쪽에 가버렸다고 돌연 몹쓸 사람으로 내모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청와대는 정 후보자를 한국의 대표적 경제학자라고 했다. 하지만 논문 편수 논란으로 이미 색이 바랬듯이, 그는 학문적 성과와 업적에서 별로 내세울 게 없다. 그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조순 서울대 명예교수와 함께 쓴 경제원론 등 몇몇 교재이지, 논문이 아니다. 그를 굳이 케인지언으로 분류한다면, 이론의 발전과 확대 등 연구업적보다 야구와 정치 등 딜레탕트한 취향과 기호가 더 돋보인다.

대신 그는 진보적 성향의 제자들은 많이 길렀다. 그런 만큼 그들의 충격과 곤혹감은 적지 않다. 평소 현실참여 욕구가 강해 기회가 주어지면 정치에 뛰어들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보수정권에 참여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선생님의 결정이니 일단 지켜보겠다는 정도다. 개혁진영으로선 중요한 자산을 잃었지만 호랑이 등에 올라타 의외로 좋은 결과를 낳을 수도 있지 않느냐는 기대도 있다. 정 후보자가 나름 비용과 효용, 혜택과 손실을 잘 따져봤을 것이라는 믿음이다.

이렇게 보면 비판세력은 그의 정치적 선택을 왈가왈부하며 핏대를 올리기보다 왠지 불분명한 정책지향점을 세세히 따지는 것이 훨씬 생산적이다. 경제학자로서 '이명박 정부의 구체적 정책에 대해 이런 저런 비판을 해왔으나 대통령과 경제철학이 같음을 확인했다'는 그 대목 말이다.

반대세력으로선 2007년 봄 정 후보자가 대선 도전 포기를 밝혔을 때 노무현 전 대통령이 꼬집었던 기회주의적 처신을 들춰내고 도덕성을 공격하는 등 그의 야심을 잘라버리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잘 훈련된 경제학적 사고로 선택의 효율과 대가를 면밀히 저울질했을 그에게 진영의식이나 조폭적 의리 같은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공허하다.

이런 관점에서 정 후보자도 관전자가 아닌 플레이어로서 입장과 태도를 명료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 "대학총장을 잘하면 뭐든 잘한다"는 피터 드러커의 말에 위안을 구할 일이 아니다. 현실정치의 복잡다단한 문제와 이해관계는 교수사회의 그것에 비교할 수 없다. 더구나 그는 정치게임에서 좀처럼 성공하기 어려운 이종교배의 실험에 스스로 응했다. 제자들이 바라는 소신과 줏대를 현실의 논리에 잘 녹이는 지혜가 요구된다는 얘기다.

소신과 현실 균형잡는 용기필요

비판적 지지자들은 정치공학적 계산에서 정 후보자가 MB노믹스 설계자 및 집행자들과 각을 세우는 투사의 모습을 원할지 모른다. 그러나 결과는 본인의 패배일 뿐이다. 그의 정신적 지주인 조순 교수가 격과 화이부동을 강조하고 정치적 멘토인 김종인 전 의원이 낮은 자세를 충고하는 뜻이겠다.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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