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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먼 사태 1년-한국 경제 얼마나 안전한가] <1> 위기는 또다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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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먼 사태 1년-한국 경제 얼마나 안전한가] <1> 위기는 또다시 온다

입력
2009.09.15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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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 한국 경제는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었다. 외국인들이 만기 도래하는 채권을 일제히 빼내갈 거라는 '9월 위기설'을 힘겹게 돌파하는가 했더니, 곧 이어 바다 건너에서 리먼브라더스 파산 소식이 전해졌다.

급랭한 국제금융시장의 높은 벽에 부딪치며 외국환평형기금 채권 발행에 나섰던 정부는 빈 손으로 귀국해야 했다.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환율, 시시각각 줄어드는 외환보유액, 그리고 점차 실물로 번져가는 위기…. 일부 외신들은 "한국 경제가 제2의 환란을 맞을 수 있다"는 무시무시한 경고를 내놓았다. 한 경제 관료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고했다.

"외부에 알려졌던 것보다 더 피를 말리는 싸움의 연속이었다"고. 한ㆍ미 통화 스와프 계약 체결, 공격적인 재정ㆍ통화 정책 등의 후속 조치로 가까스로 위기를 넘기긴 했지만, 한 순간 발을 헛디디는 순간 치유 불가능한 깊은 생채기를 입을 수 있는 절체절명의 시간이었다.

만약 다시 위기가 온다면, 당장 내일 혹은 내년 제2의 리먼 사태가 터진다면 과연 어떨까. 한 정부 고위 당국자는 "지금 이대로 다음 위기를 맞는다면, 달라질 것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인정한다.

한국 경제가 위기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요인들을 개선하고, 당국의 대응 과정에서의 문제점을 시정하지 않는다면 다음 위기에도 한국은 가장 큰 타격을 입는 나라 중 하나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우리 경제가 이렇게 대외 위기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원인은 높은 대외 의존도에 있다. 우리나라 경제가 무역에 의존하는 비중(수ㆍ출입/국내총생산)은 2007년 현재 75.1%. 일본(30.2%)의 두배를 훨씬 넘는다. 글로벌 위기의 충격이 완충장치 없이 수출을 통해 고스란히 전이될 수밖에 없다.

이른바 '신흥시장 리스크'도 근원적인 한계다.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한국 시장은 평시에는 높은 수익률을 낼 수 있는 가장 좋은 투자처이지만, 위기가 닥치면 언제 부도가 날 지 모르는 가장 위험한 투자처가 된다.

작년 한 해 외국인들이 국내 주식시장이나 채권시장 등에서 회수해 나간 금액이 무려 509억달러. 환란 이후 1999년부터 2007년까지 무려 8년간 국내에 유입된 금액(684억달러)의 70%를 넘는 어마어마한 액수다.

무엇보다 우리나라의 고질적인 외채 구조도 위기에 취약한 중요 요인이다. 총외채 중에서 언제든 상환해야 하는 단기외채가 차지하는 비중이 40%를 넘고, 만기가 1년 이내인 유동 외채 규모는 외환보유액과 거의 맞먹는다. 임경묵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우리나라의 외채 구조엔 상당히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단언한다.

임 연구위원은 "조선업계 선물환 매도도 결국에는 미래에 선박 수출로 받게 될 달러를 미리 당겨서 사용하는 것"이라며 "극단적으로 위기로 인해 선박을 발주한 회사가 부도가 나면 나중에 달러를 받지 못하는 만큼, 선물환 위험을 회피하기 위한 외채가 안전하다고 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이러다 보니 외환보유액이 3,000억달러에 육박을 해도 안심을 할 수 없게 된다.

'한국은 외환위기를 겪은 나라'라는 이른바 '낙인 효과'(Stigma Effect)도 뗄 수 없는 꼬리표다. 윤석헌 한림대 교수는 "우리 정부는 예대율이나 단기외채 비율 등 각종 유동성 지표들을 굉장히 안일하게 해석을 했지만, 밖에서는 외환위기를 겪은 나라라는 점에서 상당히 보수적으로 바라 본 것"이라며 "아무리 펀더멘털이 괜찮다고 해도 해외에서의 시각이 부정적이라면 외부 충격에 더 취약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영태 기자 ytlee@hk.co.kr

■ 바람 잘 날 없었던 '한국 경제'

지난 15년 한국경제는 위기의 연속이었다. 두 번의 대형 금융위기, 그리고 세 번의 거품. 일각에선 '위기설이 위기를 부추긴다'는 지적도 하지만, 한시도 바람 잘 날이 없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두 차례의 대형위기 중 첫 번째는 1997년 외환위기였다. 직접 원인은 당시 아시아지역을 휩쓴 금융위기의 열병이었지만, 근본적으론 40년 압축성장의 후유증이 폭발한 것이었다. 금융기관이 쓰러지고, 재벌그룹이 무너지고, 수많은 실업자들이 거리에 나앉고.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대재앙은 국민들 뇌리에 아직도 '트라우마(외상후 증후군)'로 남아 있다.

15년만에 찾아온 지난해 글로벌 금융위기의 직접적 계기는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사태였다. 리만브라더스 메릴린치 등 도저히 무너질 것 같지 않았던 월가의 대형 투자은행들이 줄줄이 쓰러지면서, 세계경제는 대소용돌이에 휘말렸다. 한국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세계 각국 정부의 기민한 공조로 '대공황 이래 최대 공포'시나리오는 현실화되지 않았지만, 글로벌 경제가 그리고 한국경제에 외부악재에 얼마나 취약한지 다시 한번 보여주는 계기가 됐다.

그렇다고 97년 외환위기와 지난해 금융위기 사이에 평화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구조조정을 통해 경제체질이 개선됐다고는 하지만, 한국경제는 결코 순항하지 못했다. 특히 대형위기 수습과정에서 정부가 추진한 무리한 경기부양책은 서로 다른 형태의 숱한 거품을 양산해냈고, 이는 금융위기 못지 않은 충격을 던졌다.

첫 거품은 이른바 '닷컴 버블.' 2000년 정부의 야심한 벤처기업육성정책이 주식시장 과열과 맞물리면서 닷컴 산업은 '돈놓고 돈먹기'식의 투전판으로 변질됐다.

두번째 거품은 '신용버블.' 경기부양 차원의 소비활성화를 위해 정부가 신용카드 규제를 완화하고, 카드사들이 무분별한 가입자 모집에 나서면서, 한국인들은 '돌려막기''빚더미'위에 올라앉게 됐다. 남은 것은 300만 신용불량자와 이로 인한 가정 파탄, 취업위기 그리고 카드사들의 몰락.

세 번째 거품은 '부동산버블'이다. 이 역시 경기부양차원에서 풀린 과잉유동성과 부동산규제완화가 핵융합반응을 일으킨 결과다. 집값은 거침없이 치솟았고, 서민들의 내집마련 꿈은 멀어졌다. 그 후유증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 '못 믿을' 신용평가

한국경제의 위기 곁에는 언제나 세계 신용평가사들이 있었다. 한국경제가 위기에 빠졌다고 선언하는 곳도, 반대로 한국경제가 위기에서 벗어났다고 추인해주는 곳도, 따지고 보면 신용평가기관들이다. 그만큼 이들이 한국 경제를 쥐락펴락한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신용평가기관들을 과연 '신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선 논란이 끊이질 않는다. 미래 위험을 미리 평가하는게 임무임에도, 사실 이들은 위기가 임박했을 때 경고음 조차 울리지 못하다가 뒤늦게 '뒷북'으로 일관해왔기 때문이다.

지난해 리먼 브러더스 파산사태도 그런 경우다. 세계 최대 신용평가기관임을 자처하는 S&P는 지난해 9월6일 리먼 브러더스의 장기신용등급을 투자적격인 'A'라고 발표했지만 리먼은 불과 9일 후 파산을 선언했다. 지난 2001년말 무디스가 에너지기업인 엔론이 파산 직전까지 갔을 때도 '투자적격' 판정을 내려 손해를 입은 투자자들로부터 소송을 당한 것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었다. 한국경제는 1997년 외환위기 직전까지 이들로부터 '투자적격' 등급을 받았지만 얼마 후 IMF 구제금융을 받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올 초에는 피치가 우리나라 은행들이 내년까지 42조원의 부실이 날 것이라고 전망해 국내 금융시장을 발칵 뒤집어 놨지만 불과 3개월여만에 '실현 가능성 없는 가설'임이 드러나기도 했다.

한 시중은행 국제금융담당자는 "신용평가기관의 문제는 현 국제금융체제가 결코 합리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며 "위기는 작은 신용 보고서 하나에도 얼마든지 생겨날 수 있다"고 말했다.

손재언 기자 chinas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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