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의 문제적인 감독 장선우는 28세였던 1980년 민주화 운동을 했다가 6개월 동안 수인으로 지내면서 영화와 만난다.
마당극과 집회, 공장 생활 등으로 뜨겁게 보냈던 20대의 삶이, 차가운 감방 바닥에 앉은 그의 머릿속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졌고, 문득 영화의 강건한 힘이 느껴졌다고 한다. 동시에 그는 "총이 등장하는 우리 현대사의 한 모습을 영화로 반드시 만들겠다"는 꿈을 품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입에 올리기조차 두려워했던 그 현대사는 바로 광주민주화운동이었다.
장 감독은 '성공시대'와 '우묵배미의 사랑', '경마장 가는 길', '화엄경' 등의 우회로를 오랜 시간 돌아 1996년 '꽃잎'이라는 자신의 오랜 목표에 다다른다.
인생의 중요한 선택과 결단은 깨달음처럼 불현듯 찾아오는 것인지 모른다. '미녀는 괴로워'와 '국가대표'의 김용화 감독은 고등학교 2학년 때 한 순간에 삶의 진로를 결정했다.
어느 도색잡지에 실린, 미국의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사진 한 장이 슈퍼마켓 주인과 체육교사라는 평범한 직업을 생각했던 그의 삶을 흔들어 놓았다. "'지옥의 묵시록'의 한 장면을 찍기 위해 헬리콥터를 타고 카메라와 함께 밖으로 몸을 내민 그 모습이 너무 인상적이었다.
나이 들어서도 자기 일을 하며 멋있게 살 수 있는 직업이 무엇일까 고민을 했고 감독이 되겠다고 마음 먹었다." 김 감독은 재수를 한 끝에 영화과에 진학했고, 5년 동안 생선장수를 하면서도 감독의 꿈을 놓지 않았다.
최근 방한한 일본 애니메이션 감독 린 타로는 '모로 가도 서울로 가면 된다'고 생각했다가 세계적인 명장이 된 경우다. 그는 "(1960년대 일본 최고의 배우였던) 이시하라 유지로의 모든 것을 따라 했고 실사영화 감독의 꿈을 꾸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17세에 일본 최초의 애니메이션 제작 전문사인 도에이동화에 입사했고, 이후 50년 외길을 걷게 됐다.
"도에이동화가 대형 영화사인 도에이의 자회사였다. 바로 옆에 있는 영화 촬영소를 갈 수 있다는 불순한 생각으로 애니메이션 일을 시작한 것이다."
뜻하지 않은 선택이든 별안간 내린 결정이든 간절히 바라면 무엇이든 이뤄지기 마련인가 보다. 최소한 영화계에서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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