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요 이완." "함께 하고 싶어요." "뽀뽀해주세요."
지난 11일 오후 5시(현지시간) 태양이 조금씩 빛을 잃어갈 무렵 캐나다 토론토의 도심 심코가(街)에 위치한 극장 로이 톰슨 홀 광장에 검은색 캐딜락 승용차가 미끄러져 들어왔다. 기다렸다는 듯 플래시 불빛들이 번쩍이며 햇빛을 대신했다.
영국 출신의 영화배우 이완 맥그리거가 차에서 내리자 영화 팬 600여명이 환호성을 터뜨렸다. 이완은 발을 동동거리며 손을 흔드는 팬들과 악수, 포옹하며 사인을 해주었다.
뒤이어 들어온 캐딜락에서 할리우드의 큰 별 조지 클루니가 몸을 빼내자 여성 팬들은 아예 비명을 질렀다. 조지도 이완과 마찬가지로 팬들과 일일이 악수하며 파안대소했다. 이어서 등장한 배우 제프 브리지스도 팬들의 마음을 흔들어놓았다.
세 사람이 함께 출연한 신작 '염소를 노려보는 사람들'을 관람하기 위해 극장으로 향하는 순간에도 함성은 그치지 않았다. 코미디 연기로 유명한 빌 머레이와 '볼링 포 콜럼바인' 등을 연출한 미국의 괴짜 감독 마이클 무어가 팬들의 뜨거운 눈길을 받으며 극장에 입장했다.
■ 세계 영화의 새 중심지
이날 하루 토론토의 영화 팬들 앞에 떴다가 사라진 세기의 별이 이들만은 아니었다. '오션스 일레븐'과 '에린 브로코비치' 등을 만든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 '피아노'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호주 감독 제인 캠피온, '글래디에이터'의 리들리 스콧 감독, 영화배우 맷 데이먼, 윌렘 데포, 틸다 스윈톤, 실리안 머피, 이사벨라 로셀리니, 에바 그린 등이 환대를 받았다.
이들 외에 폴 베타니, 제니퍼 코넬리, 메간 폭스, 줄리안 무어, 리암 니슨 등 세계의 숱한 별이 10일 개막한 제34회 토론토국제영화제에 참가하기 위해 레드 카펫을 밟았다. 유명 영화인의 대거 참가는 토론토영화제의 위상을 실감케 했다.
토론토영화제는 세계 영화계의 새로운 실세다. '북미의 칸' '상반기엔 칸, 하반기엔 토론토'라는 말이 세계 영화계에 통용되고 있다. 칸, 베를린과 함께 오래도록 3대 영화제의 아성을 지켜온 베니스영화제를 이미 제쳤다는 평가도 제법 많다. 현지 관광가이드 리차드 파인스 클린턴씨는 "3대 영화제는 칸, 베를린, 토론토"라고 거침 없이 말했다.
미국 아카데미영화상의 전초전이라는 말까지 흘러 나온다. 지난해 토론토영화제 관객상을 받은 '슬럼독 밀리어네어'는 올해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 등 8개 부문을 휩쓸었다. 할리우드 스타들의 토론토 행이 이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 다종다양한 영화들의 집결지
토론토영화제는 칸, 베를린 등과 달리 공식경쟁부문이 없다. 경쟁부문으로 권위를 확보하는 대신 관객의 지원을 적극 활용한다. 예술영화와 인디영화, 상업영화 등 다종다양한 세계의 주요 최신작 300여편이 매년 관객을 위해 상영된다.
지난해 영화제 기간 중 팔린 티켓은 무려 47만장. 1억500만 달러를 들인 행사는 1억3,6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요컨대 토론토영화제는 어떤 이념이나 주의, 주장을 제시하기 보다 관객의 다양한 눈높이에 맞춘 관객의, 관객을 위한, 관객의 사랑을 받는 영화제인 셈이다.
19일 막을 내리기까지 올해 토론토에서 상영될 영화는 64개국에서 만든 335편(장편 271편, 단편 64편). 이 가운데 95편은 세계 최초로 팬들과 만난다. 피어스 핸들링 집행위원장은 "토론토영화제는 집중력 있는 축제"라며 "여러 사람이 마음에 품은 많은 것이 있는 곳"이라고 강조했다.
미주 시장 진출의 교두보 역할도 토론토영화제의 강력한 무기다. 토론토영화제는 칸과 함께 세계 영화제 마켓의 쌍두마차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프랑스 영화 수출을 담당하고 있는 유니프랑스USA의 존 콕맨 이사는 "토론토에서 환대를 받으면 미국 배급자들이 그 작품을 선택할 것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중국 삼련생활주간의 마롱롱 기자는 "세계로 진출하고자 하는 중국 영화들에 토론토영화제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평가했다.
토론토=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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