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가을의 한국. 5년 전 '리먼 사태'의 끔찍했던 악몽은 이미 잊혀진 지 오래다. 대신 '외환위기에 이어 글로벌 금융위기도 세계에서 가장 빨리 탈출한 나라'라는 찬사만 들릴 뿐이다.
하지만 나라 밖에선 또 하나의 재앙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미국경제가 '출구'찾기에 미적거리는 사이 월스트리트는 '파티'에 취해갔고, 중국은 고속압축성장의 후유증이 곪을 대로 곪은 상태였다.
글로벌 금융위기 제2탄. 세계경제는 5년 전보다 더 극심한 마비 상태에 빠지고 만다. 다시 찾아온 재앙 속에서 과연 한국경제는 무사할 수 있을까.
가상의 시나리오지만, 마냥 비현실적인 얘기는 아니다. 2012년일 수도 있고, 2015년일 수도 있지만 위기 재발가능성은 얼마든지 열려있다.
"금융위기는 다년생 잡초처럼 사람들의 망각을 양식 삼아 끊임없이 부활한다"는 찰스 킨들버거 미 MIT 교수의 말처럼, 인간의 탐욕이 존재하는 한, 금융자본주의가 무(無)결함의 체제가 아닌 한, 위기는 언젠가 다시 오기 마련이다.
물론 한국경제의 위기돌파능력을 과소평가해선 안된다. 10년전 IMF체제도 조기 졸업했고, 1년 전 금융위기에서도 가장 먼저 벗어났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일단 위기가 터지면 한국경제를 극찬했던 해외기관들은 그랬냐는 듯 180도 얼굴을 바꾼다. 외국인들은 앞다퉈 한국에서 발을 빼고, 한국기업ㆍ금융기관들은 하루 아침에 국제금융시장에서 찬밥 신세로 전락한다. 외환보유액이 얼마이든, 무기력하기만 하다는 것은 지난 두 차례 위기를 통해 뼈저리게 느꼈던 경험이다.
관건은 위기 자체가 아니라 위기대응력이다. 나라밖에서 터지는 재난을 막을 능력은 없지만, 빠르게 전이되는 위기바이러스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경제의 면역체계, 방재(防災)능력에 달려 있다는 게 것이다. 그것은 대외의존도 높은 나라의 숙명이기도 하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차제에 '리먼사태 1년'을 차분하게 되돌아볼 것을 주문하고 있다. '끝장토론'을 통해서라도 대처과정에서 문제점은 없었는지 따져보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기고, 그럼으로써 보다 발전된 위기대응시스템을 만들자는 것이다.
강석훈 성신여대 교수는 "10년 전 엄청난 위기를 겪었으면서도 제대로 된 백서 하나 남기지 않았다는 것은 매우 부끄러운 일"이라며 "이번에도 같은 우를 되풀이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도 "체계적인 룰에 근거해 사전 대비를 하고, 또 룰에 의해 대응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빠른 경기회복에 도취돼 위기가 준 비싼 수업료를 그냥 날려버려선 안된다. 리먼사태 1년을 맞아 정부는 정부대로, 기업과 금융기관은 또 그들대로 '위기대응 매뉴얼'을 만들어야 한다.
이영태 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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