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자 지음/푸른역사 발행ㆍ236쪽ㆍ1만2,900원
관직에 연연하지 않고 왕에게 직간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구한말 유학자 곽종석은 나라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에 괴로워하고 의분에 떨었던 선비 중의 선비였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직접 무력 행동에 나선 것은 아니었는데 그것은 당시까지도 선비라면 비분강개는 할망정 함부로 행동해서는 안된다는 관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후 외세의 침탈이 본격화하고 나라가 더욱 위태로워지면서 선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바뀌기 시작한다. 아무리 선비 혹은 사대부라도 무력 능력이 중요해졌으며 왕실도 그런 인물을 기용하기 시작했다.
박노자 오슬로국립대 교수의 <씩씩한 남자 만들기> 는 1890년대부터 1900년대 초까지 조선에서 일어난 남성상의 변화를 살핀 책이다. 국권 침탈의 위기 속에서, 간접적으로 전해진 유럽, 미국 등의 남성상을 접하면서 이 땅에서도 변화가 생긴 것이다. 씩씩한>
그 변화의 움직임을 주도한 세력은 독립신문 등을 근거로 활동하던 개화주의자들이었다. 고결한 대의와 명예로운 희생을 강조하는 유럽 민족국가 중산층 남성상에서 영향을 받은 이들은 조선의 남성 역시 그런 모습을 갖추기를 기대했다. 그들에게 유럽의 이상적 남성상은 심신이 조화된 남성이었고 그런 모습은 규율화한 행동과 체력, 협동심 등을 운동장에서 단련함으로써 갖출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무력 혹은 폭력에 대한 관념도 바뀌었다. 박은식이 국왕을 시해했지만 당나라와 맞서 싸운 연개소문을 영웅으로 그린 것이 그런 사례다. 독립신문이 한 사설에서 '호전적 정신을 고양하기 위해 도입돼 세시풍속으로 전해졌다는 석전(石戰)이나 편싸움 등은 참가자나 구경꾼의 생명을 위협하지 않는 한 중단돼서는 안된다'고 주장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서재필은 "체격에 관한 한 조선인은 다른 모든 동양인보다 결정적으로 유리한 입장에 서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저자 박노자 교수는 19세기말, 20세기초에 형성돼 지금도 영향력을 발휘하는 한국의 이런남성상이 이제는 변해야 할 때라고 말한다. 그가 제시하는 미래의 남성상은 배려와 돌봄을 실천하는 남성이다. 가사를 분담하고 육아노동에 참여하며 사회문제 해결에 자신을 던지는 그런 남성이다.
박광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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