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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희 기자의 책갈피] '사코와 반제티'사건에 투영된 한국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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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희 기자의 책갈피] '사코와 반제티'사건에 투영된 한국사회

입력
2009.09.13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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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어려움 없이 세계 최강국이 된 것은 아니다. 미국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 나라 역시 여느 나라 못지않게 심각한 대립과 고통을 겪으며 오늘에 이른 것을 알 수 있다. 하워드 진의 <미국 민중사> 등을 읽으면 유럽의 백인이 원주민을 밀치고 들어온 그 순간부터 이 나라는 갈등과 혼돈에 휘말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세기 초에는 노동운동의 기운이 일기 시작한다.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던 노동자들은 임금인상과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했고 사용자와 정부는 강경 대응으로 맞섰다. 시간이 흐를수록 대립은 거세져 파업과 폭동이 잇따랐고 경찰 진압 과정에서 목숨을 잃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자본주의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사회주의와 무정부주의가 유입된 것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그 영향을 받은 작가 잭 런던은 <강철군화> 에서 사회주의자의 형제애를 그렸고 업턴 싱클레어는 <정글> 에 사회주의를 꿈꾸는 주인공을 등장시켰다.

소비에트 혁명이 일어나자 미국 보수층의 좌익 알레르기 반응은 극에 달했다. 제1차 세계대전까지 겹치면서 애국주의 바람이 거세게 일었고 무정부주의자 등에 대한 대대적인 소탕 작전이 전개됐다. 이탈리아 이민자 사코와 반제티가 사형 선고를 받은 것은 이런 역사적 배경을 갖는다. 사코와 반제티가 사형에 이른 과정에서 알 수 있듯 그때 미국의 사법부는 법과 정의와 양심을 따르지 않은 경우가 있었다.

사코와 반제티 사건을 보면 자연스럽게 우리의 모습이 떠오른다. 우리 역시 한때 일방적인 이념의 광풍에 휩싸여 살았다. 그 시기에는 정부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사상이 의심된다는 이유로 감옥으로 끌려가고 목숨을 잃었다. 그때 우리의 사법부도, 사코와 반제티 사건을 다룬 1920년대 미국 사법부처럼, 인권보다는 체제를 지키려고 했다.

사코와 반제티 사건은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는 수십만 이주노동자들의 인권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한다. 그들은 한국 노동자보다 훨씬 나쁜 조건에서 일하고 생활하며 인권을 온전히 보장받지도 못하고 있다. 더 무서운 것은 그들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 사코와 반제티 역시 이탈리아계라는 이유로 미국에서 무시를 받았다. 혹시 우리가 이 땅이 좋아 찾아온 이주 노동자를 무시하고 비하하는 의식을 갖고 있지는 않은지 한번 돌아보아야겠다.

박광희 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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