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오후 5시께 인천국제공항 입국장. 캐나다 캘거리에서 열렸던 제40회 국제기능올림픽 출전 선수들이 화려한 플래시 세례와 박수 속에서 입국장 문을 나왔다.
조적(組積 ㆍ벽돌쌓기) 직종에서 금메달을 딴 이태진(18)선수도 카트를 밀고 나오자, 용산공고 구만호(47) 교사가 인파를 뚫고 가장 먼저 이 선수에게 다가가 반갑게 껴안으며 어깨를 두드렸다. 구 교사는 제자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짧게 안부를 물었다. 표현이 서툰 스승과 제자는 서로 말없이 눈시울을 붉혔다.
구 교사는 이 선수가 올해 용산공고를 졸업한 뒤 기능올림픽 대회에서 금메달을 따기까지 헌신적으로 그를 지도했다. 구 교사는 13년 전부터 망막세포가 퇴행하는 망막색소변성증을 앓아 눈이 잘 보이지 않는 1급 시각장애인. 벽돌을 쌓아 1mm의 오차만 생겨도 큰 감점을 받는 조적 분야를 지도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지만, 헌신적인 노력과 열정으로 어려움을 극복했다.
용산공고 건축디자인과 교사로 2004년부터 조적 분야를 맡게 된 구 교사는 지난해 이 선수의 전국대회 출전을 계기로 본격적인 호흡을 맞췄다. 비록 눈 앞이 흐릿하지만 구 교사는 컴퓨터로 설계도면을 확대해서 확인하거나 시력보조장비를 통해 이 선수의 작업과정을 꼼꼼히 점검했다.
구 교사는 재단, 벽돌마름질, 미장, 줄눈 작업 등을 꼼꼼히 기록하고 분석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이 선수와 함께 반복했다. 전국대회 금메달 수상자들을 찾아 다니며 노하우를 배우고 좋은 공구를 찾아 개조하는 일도 구 교사의 몫이었다. 지난해 가을 이 선수는 보란 듯이 국내대회에서 금메달을 딴 데 이어 국제기능올림픽에 나갈 대표 선수로도 선발됐다.
기능올림픽 준비 과정에서도 구 교사의 뒷바라지는 계속됐다. 이 선수와 함께 캘거리까지 함께 간 구 교사는 대회 전날에 주최측이 제공하는 재료가 국내에서 연습한 재료와 다르다는 것을 알고 그에 맞는 공구를 구하느라 캘거리 시내를 3시간이나 돌아야 했다.
대회장에서도 속이 타는 건 구 교사였다. 관객석에서 이 선수의 작업 모습을 조금이라고 보고 싶은 마음에 망원경을 꺼내 들었는데, 망원경을 촬영 장비로 오해한 심판에 의해 퇴장 명령을 받아 관객석을 떠나야 했다. 경기는 2~4일 사흘간 치러졌다.
이 선수의 금메달 획득이 확정된 것은 5일 밤 11시께. 다른 선수들과 함께 한인식당에서 심사결과 발표를 초조하게 기다리던 구 교사와 이 선수는 낭보가 전해지자 서로 부둥켜 안고 한바탕 눈물을 쏟아냈다.
선수단에 앞서 9일 귀국한 구 교사는 이날 제자의 자랑스러운 개선 광경을 지켜보기 위해 인천국제공항에 마중 나왔다. 이 선수는 "선생님이 아니었으면 오늘의 저는 없었다"며 환하게 웃었다.
구 교사는 앞으로 시각장애인이 다니는 학교로 자리를 옮겨 학생들을 지도할 계획이다. "100여명의 정상적인 선생님들 속에서도 큰 불편 없이 생활했습니다. 저처럼 장애를 가진 학생들이 사회에서 일반인들과 함께 불편 없이 살고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가르치겠습니다."
강희경 기자 kbsta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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