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얼마나 많이 팔리면 3초백(3초에 1명꼴로 들고 다니는 사람을 볼 수 있는 백)으로 불리는 루이비통 가방. 이 가방을 국내에서 판매하는 루이비통코리아는 10일 소위 '짝퉁' 제조업자와의 오랜 싸움에서 최종 승소했다고 밝혔다.
루이비통의 LV모노그램을 그대로 본 딴 '산타브이'라는 브랜드로 가방을 제조 판매해 온 도·소매업자를 상대로 지난해 4월 상표권 침해 금지 소송을 낸 회사는 대법원까지 가는 치열한 법정 공방 끝에 재판부로부터 "직관적으로 인식되는 모티브, 전체 구성, 배열 및 표현의 유사성에 근거해 혼동의 우려가 있다"는 최종 판결을 받아 냈다.
#2 제일모직의 아동복 브랜드 빈폴키즈. 올 봄 신상품으로 빨강색 라인에 귀여운 아이들이 뛰어 노는 그림이 담긴 치마를 선보였다가 급하게 회수해 전량 폐기했다.
프로모션 업체가 빈폴키즈를 위해 제조 납품한 이 제품이 롯데백화점에서 팔리는 프랑스 아동복브랜드 드팜의 제품과 똑같았기 때문. 제일모직 관계자는 "카피인줄 전혀 몰랐다"며 "하마터면 브랜드 이미지에 치명상을 입을 뻔 했다"고 가슴을 쓸어 내렸다.
패션 업계의 고질병인 디자인 카피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진품과 똑같이 만든 짝퉁들이 명동 한복판에서 버젓이 팔리는 마당에 완전히 똑같은 것도 아니고(적어도 로고는 다르다) 디자인 좀 베꼈다고 문제될 것 없다는 인식이 퍼져 있는 탓이다.
하지만 디자인은 엄연히 지적재산권에 속한다. 루이비통의 승소 소식은 디자인 카피가 타인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것임을 다시 한번 확인해 줬다. 하지만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는 법. 법망을 피하기 위한 모조 기법은 날로 진화하고 인스피레이션(inspirationㆍ영감) 또는 오마주(hommageㆍ 존경 경의를 표하는 것)라는 이름으로 승화(?)하기도 한다.
가을 패션 상품을 구경할 셈으로 인터넷 서핑에 나선 패션 업체 직원 윤정희씨의 경험이 대표적이다. 모 여성복 브랜드의 전자 카탈로그를 보던 그는 '어, 이건 셀린느 가방이잖아'라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 브랜드의 신상품으로 나온 핸드백이 럭셔리 브랜드의 제품과 똑같아 보였기 때문.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니 딱 한가지가 달랐다. 가방 뒤쪽에 조그맣게 붙어 있는 로고가 셀린의 더블C 로고가 아닌 CL이었던 것. 윤씨는 "로고만 살짝 바꿔 놓은 걸 보니 황당하면서도 한편은 측은하더라"고 했다.
GV2에서 내놓는 프리미엄 데님 라인 옵티머스도 카피와 인스피레이션의 경계를 오간다. 컬러감 있는 굵은 스티치와 포인트 색상으로 사용된 오렌지색, 화려한 큐빅 장식 등이 인상적인 청바지 제품들은 최근 국내에도 도입된 미국 데님 브랜드 라구나비치진과 놀라울 만큼 흡사하다.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애용하는 것으로 알려진 이 브랜드는 청바지 뒷주머니를 장식한 강렬한 오렌지색, 허벅지 옆선과 포켓의 굵은 스티치, 그리고 화려한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탈로 유명하다.
코카롤리가 내놓은 블랙 워싱 데님은 프랑스의 디자이너 브랜드 발맹의 제품에서 힌트를 얻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무릎 부분의 디자인.
스키니 팬츠의 무릎 부위에 절개를 넣어 강하면서도 날렵한 인상을 살려 주는 것이 디자인의 주요 포인트다. 발맹의 제품과 다른 점이 있다면 발맹은 사선으로 절개를 넣은 반면, 코카롤리 제품은 직선으로 돼 있다는 정도.
올리브데올리브는 아예 오마주라는 이름으로 샤넬 스타일을 그대로 표현했다. '오마주 컬렉션'이라는 이름 아래 1920년대 모던하고 우아한 디자인의 대표 아이콘인 코코 샤넬의 열정적 삶과 패션에 헌정하는 아이템들을 선보이면서 트위드 소재의 재킷과 원피스, 금속 체인의 퀼팅백, 미니드레스 등을 내놓았다.
올리브데올리브만의 사랑스러운 감성을 재해석했다는 설명을 붙이긴 했으나 오마주 컬렉션이라는 설명을 빼놓고 보면 원조 샤넬 스타일을 그대로 가져다 놓은 것처럼 보이는 것을 어쩔 수 없다.
영국 패션의 대모로 불리는 디자이너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이런 말을 했다. '패션에서 진정한 창조는 1960년대에 다 이뤄졌다. 그 이후는 창조적 모방이 있을 뿐이다.'
연도를 바꿔가며 복고풍을 내놓는 것에 대한 훌륭한 면죄부가 될만한 발언이지만 중요한 것은 단순 모방이 아닌 '창조적' 모방이어야 한다는 것. 업계 관계자는 "창조와 모방은 종이 한 끝 차이라지만 브랜드들이 진정한 정체성을 통해 승부하려는 정신이 아쉽다"고 말했다.
이성희기자 summ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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