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삼성ㆍ한진중공업은 올해 들어 선박 제작 주문을 한 건도 받지 못했다. 한진중공업은 작년 상반기까지만 해도 주문이 쇄도해 물량을 필리핀 수빅 조선소에 넘겨주기도 했지만, 1년새 상황이 180도 바뀌었다. 일감이 2년 이상 남아있다는 게 위로지만, 불안감은 커질 수밖에 없다.
#2. 일부 조선소들은 호황기 때 수주해 최근 건조한 선박을 주인이 찾아가지 않아 골치가 아프다. 고객과의 신뢰 관계 탓에 클레임(배상 청구)을 제기할 수도 없다. 찾아가지 않은 배를 관리하는데 적지 않은 비용이 들지만, ‘하루에 끝낼 장사’가 아닌지라 속앓이만 하고 있는 상황이다.
국내 대형 조선업계의 수심이 깊어간다. 경기침체로 주문이 줄 것이란 전망이 없었던 게 아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글로벌 경기부양책 등에 힘입어 경기가 바닥을 찍었다는 소식이 들리지만 조선업계는 여전히 거센 삭풍을 맞고 있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대형 조선소들의 ‘수주 공황’이 지속되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올해 들어 한 척도 수주하지 못했다. 작년 1~9월 수주 규모(39척, 48억8,000만달러)를 감안하면, 시황이 너무나 갑작스레 변한 게 놀라울 뿐이다. 한진중공업도 현 분위기로서는 올해 수주를 기대하긴 어려울 전망이다.
대우조선해양도 상황은 비슷하다. 작년 1~9월(57척, 79억7,000만달러)에 삼성중공업보다 더 많이 수주했지만, 올해는 여객선 2척(2억달러)을 수주한 게 전부다. 세계 최대 조선소인 현대중공업도 마찬가지다. 올해 수주 금액(현대삼호중공업 포함)은 3억7,400만달러(8척)로, 작년 같은 기간(163억3,000만달러, 136척)에 비하면 지극히 초라하다.
STX조선해양은 올해 탱커선 등을 중심으로 4억2,000만달러 어치를 수주했다. 작년 같은 기간 52억달러의 10%에도 못미치지만 상대적으로 나은 편이다.
그렇다고 중국업체처럼 ‘출혈 수주’를 할 수도 없다. 가격을 낮추기 시작하면, 채산성이 떨어질 뿐 아니라 향후 수주가격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중국업체들은 기존 단가보다 10%정도 ‘후려치기’ 를 하면서 우리나라는 올 6, 7월 수주량 1위 자리를 중국에 내줬고, 8월도 같은 상황이다.
문제는 회복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 선박 수요처인 해운업계 상황이 녹록지 않다. 경기 반등 영향으로 물동량이 다소 늘고 있지만, 해운시장에는 호황기 때 주문 받은 선박이 쏟아져 나오면서 중고 선박에 대한 ‘폭탄 세일’도 등장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조선소를 떠나지 않는 배도 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건조 중인 선박 인도를 늦춰달라는 얘기는 이미 옛말이 돼 버렸다”며 “대부분 쉬쉬하고 있지만, 이미 만든 배마저도 주인의 인수 유보 요청으로 조선소 인근에 정박해 있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믿었던 해양플랜트도 지지부진하다. 삼성중공업이 7월에 컨소시엄 방식으로 500억달러 규모의 LNG-FPSO(부유식 생산ㆍ저장ㆍ하역설비) 프로젝트 계약자로 선정된 것을 제외하면, 아직 별다른 성과가 나오지 않고 있다.
관심을 모았던 브라질 페트로브라스의 유전 개발 프로젝트 수주전에서 국내 업체들이 모두 탈락해 실망감이 적지 않다. 총 8척의 FPSO에 대한 수주전에서 유력업체였던 국내업체들을 제치고 브라질업체 컨소시엄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다만, 호주 고르곤 가스개발 사업, 러시아 시토크만 프로젝트, 엑슨모빌 해양 프로젝트 등이 남아 있다. 하지만 브라질 수주전처럼 예상 밖의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점에서 업계의 근심이 클 수밖에 없다.
대형 조선소 관계자는 “해운시장이 회복되지 못하면서 선주들이 굳이 선박 주문을 내려 하지 않고 있다”며 “경기 회복에 따른 물동량 증가가 눈에 띄게 나타나야 후행적으로 조선업계에도 희망이 보이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기수 기자 bless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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