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가 수신료 인상을 위한 '군불 때기'에 나서면서 적잖은 진통이 예상되고 있다.
KBS는 공영방송의 정체성 확립과 공익적 책무 확대, 디지털 전환에 따른 수신환경 개선, 시청자 권리 보호 등을 내세워 오랜 숙원인 수신료 인상이 불가피하다며 올해 내 수신료 인상안 국회 통과를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물론 보수와 진보를 망라한 관련 단체들은 수신료 인상에 앞서 KBS의 자구 노력과 분명한 비전 제시를 요구하고 있다.
"4,000~5,000원 선으로 인상 검토"
KBS 수신료는 1981년 월 2,500원으로 책정된 이후 29년째 동결됐다. 여기에 최근 광고수입 등까지 위축돼 재정적자 규모가 고착화되고 있다는 게 KBS의 주장이다.
임창건 KBS 정책기획센터장은 8일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열린 '텔레비전 방송 수신료 현실화' 공청회에서 "장기간의 수신료 동결 상황에서 늘어나는 재정수요를 광고수입에 의존하다 보니 KBS 재원구조의 왜곡 현상이 장기화되고 있다"며 "광고수입 우위의 재원구조는 공영적 편성과 공적 책무의 확대를 추진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임 센터장은 "KBS의 광고수입은 2003년 이후 5년 새 21%나 감소하고 최근 들어 하락 폭이 매년 10% 이상으로 심화되고 있는 추세"라며 "예산절감과 임금동결, 인력감축 등 적자 해소 노력에도 불구하고 구조적 악조건을 타개하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며 수신료 인상의 불가피성을 주장했다.
KBS는 수신료를 현재의 월 2,500원에서 4,000∼5,000원으로 인상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임 센터장은 "수신료 인상과 광고 감소를 자체적으로 시뮬레이션한 결과 수신료를 4,000원으로 올리면 총 수입 중 광고 비중이 30%로 줄어들고 4,500∼4,800원으로 올리면 20% 내외, 5,000원으로 인상하면 15%로 떨어진다"고 밝혔다.
KBS는 수신료 인상을 전제로 KBS 2TV 광고 축소, 지상파 DMB 및 라디오 광고 폐지, 2013년까지 정원 대비 인력 15% 이상 감축 등 자구안을 내 놓았다. KBS는 9월 중 수신료 인상안을 확정해 이사회에 올리고, 방송통신위원회 검토를 거쳐 정기국회에 제출한다는 계획이다.
"공영방송의 제자리부터 찾아야"
그러나 KBS의 이 같은 주장과는 달리 이날 공청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물론, 보수·진보단체들까지 수신료 인상 반대에 가세하고 나섰다.
강명현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는 "정치권이 대승적 차원에서 공영성의 가치를 인정하고 합의하는 게 필요하다"면서도 "KBS가 디지털 전환비용 등을 위해 수신료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하지만 일반 국민들이 얼마나 동의해 줄지 의문이다.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공약 제시 등 비전도 없다"고 지적했다.
윤석민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KBS의 발제문에는 수신료를 얼마나 인상할지에 대한 알맹이가 빠져 있어 진지한 토론이 어렵다"고 말했다.
공청회에 참석한 방청객들도 "올해 흑자를 낸 KBS가 경제위기에 허덕이는 국민들을 상대로 수신료를 올리겠다고 하는 게 적절한지 의문"이라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수신료 현실화가 불가피하지만 공영방송으로서의 정체성과 비전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국민을 설득할 수 있다"(이병철 대한변호사협회 사업이사)는 등 수신료 인상에 앞서 KBS의 분명한 자구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는 주문도 있었다.
뉴라이트전국연합과 함께 보수·친여적 입장을 줄곧 표명해온 민생경제정책연구소는 'KBS, 수신료 정의와 징수방법부터 다시 정비하라'는 성명을 내고 "KBS가 공공의 문제의식 없이 자신들의 기득권만 챙기려 하는 것은 어이없는 태도"라며 "1994년 출범한 케이블TV의 수신료는 오히려 절반 이하로 떨어진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디어행동은 "공영방송이 제자리만 찾을 수 있다면 수신료 현실화는 얼마든지 검토할 수 있지만 그전까지는 수신료의 '수'자도 꺼내지 말라"고 주장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정권에 장악된 KBS가 수신료를 현실화하겠다는 것은 국민을 얕보는 행태"라고 비판했다.
김종한 기자 tell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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